어른이라는 허울

by 김희영

"네가 봤을 때 나는 어떤 사람이야?"

타인의 시선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래서 대학교 4년을 함께 보낸 같은 학과 동기에게 물었다. 첫인상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었다. 평소, 날 보면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한 것이었다.

친구는 대답했다.

"이야기 듣는 걸 좋아하는 척하는, 속으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하는 솔직하지 못한 사람."

"왜 그렇게 생각해?"

"사람이 어떻게 남 이야기만 듣고 살 수 있나. 내 얘기를 하고 싶을 때도 있는 거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는 친구의 모습에 나는 한참 말을 잇지 못했다.





남의 고민을 담담하게 들어주는, 어른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감정은 숨기면서, 남의 고충을 들어주고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사람. 사실 나이가 좀 더 어릴 때 말을 잘못해서 실수를 한 적이 많았다. 내 의도는 그것이 아닌데, 본의 아니게 사람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그래서 다짐했었다. 말을 조심하자. 언제나 경청하는 사람이 되자. 그것은 깊이 있는 사람이 되고잔 '나'라는 이름의 책 표지와도 같았다.

그랬는데, 대학 4년을 같이 다녔다고는 하나 내 속내를 전부 보여준 적이 없는 이 친구가 날 더러 '솔직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한다. 내내 숨기며 살아왔는데, 진짜 내 모습을 보여준 적도 없는데, 꾸며진 모습이 진짜인 듯 가식적으로 살아왔는데. 친구의 대답을 듣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혹시 다른 사람들도 나를 다 알아버렸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늘 계산적이고, 각본에 짜인 체계적인 표였다. 자유로운 척하나, 계획에 끌려 사는 수동적인 사람이었다. 실패를 두려워한 탓이다. 그러나 겉으로는 따뜻한 감성을 지닌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룰 수 없는 꿈에 젖어 살면서, 여유로운 척했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며, 슬퍼할 줄 아는 사람인 척했다.

나도 가끔은 모든 걸 내려놓고 싶어.

꾸며진 것들 있잖아.

나도 때론 널브러지고 싶고, 게으르고 싶을 때가 있어.

내 얘기 마음껏 하고 싶고, 기분 나쁠 땐 화도 내고 싶어.

사실 담담한 척했지만, 강인한 척했지만, 당당한 척했지만, 오늘을 사는 때엔 어쩔 수 없이 감춰야만 하는 것들이 있었다. 사사로운 감정 같은 것이나, 속 얘기 같은 것들. 어른이기 때문에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그 어른이라는 허울 좋은 단어는 입을 더 굳게 다물게 하고, 회피하게 만들었으며, 이중적인 사람으로 만들었다. 솔직하지 못하게, 거짓말쟁이로 만들어 갔다.

어릴 적에는 내가 하고 싶은 꿈, 여러 가지 감정들을 표현하며 살아왔는데. 하지만 요즘은 왠지 죽을 때까지도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멋쩍은 듯 웃었다.

"와, 나 조금 부끄럽다."

"왜?"

"그냥, 뭔가 다 들켜버린 느낌이라."

우리는 모두 똑같을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그, 마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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