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록(小考錄)

위로를 새기다

by 김희영
안녕, 애들아
늘 꿈을 향해, 앞만 보고 달리는
멋진 친구들이 되길 바라.
나중에 돌이켜보면, 지금의 힘든 순간들도
아름다울 때가 올 거야.
멋지다, 힘내.


어제 오래간만에 대학교 방송국을 찾았다. 속내는 방송국 선배의 결혼식 축의를 대신 전해줄 후배를 만나는 것이었지만, 겉 포장은 그럴싸하게도, 현재 대학교 방송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현역들을 응원하러 가는 걸음처럼 비쳤다.

버스를 타고 대학교로 향하는 내내, 가슴이 뛰었다. 한 손에는 후배들에 건넬 케이크를, 다른 한 손에는 추억을 쥐었다.

졸업하고 난 후, 2년. 나의 청춘의 대부분을 보냈던 그곳을 다시 가려니 가슴이 가만있질 않았다.


나의 대학 생활은 죽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었다.

표현이 너무나 직설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것 말고는 그럴싸한 표현이 없다.

방송인이 되고 싶었다. 팍팍한 일상을 보낸 사람들의 마음을 사연과 노래로 주무를 줄 아는 사람. 방송을 마친 후에는 글을 소소하게 쓰며 뒤늦은 등단을 꿈꾸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라디오 PD가 되고 싶었다. 내가 대학교 방송국 생활을 시작한 것도 그 이유 때문이었다.

"아르바이트는 안 돼, 무조건 방송국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어야 해"

나는 그 당시 방송국 선배의 말에 따라 정말이지 "죽지 않을 만큼"의 시간을 보냈다.

낮에는 수업을 들어야 했지만, 학교 행사가 있으면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녔다. 아침, 점심, 저녁 교내방송에 맞춰 멘트를 쓰고 읽어야 했다. 낮에 찍은 학교 행사를 영상으로 편집해야 했고, 가끔은 캠페인 영상이나 창작물들을 제작해야만 했다. 아나운서부, 기술부, 보도부, 제작부. 부서는 사실상 의미가 없었다. 방송국에서 열정이란 이름을 불사르는 사람들은 고작 4명이었다. 덕분에 나는 제작부를 지망했지만, 마이크 앞에 서기도 했고, 편집하기도 했고, 취재를 나가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내 인생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의심하지 않았다. 일단 라디오 PD가 되고 싶다는 그 열망 하나로 어떻°‘든 버티기만 한 것이다. 졸업 후 이력서에 쓰일 단 한 줄,

"대학교 방송국 활동"을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학교 1학년 땐 정말 배고팠다. 집에서는 한 달에 3만 원씩 용돈을 부쳐주셨지만, 그것으론 책값도 부족했다. 헌책을 물려받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새 옷을 사 입는 것은 사치였다. 교내 벚꽃축제 때면, 예쁜 원피스를 입고 캠퍼스를 활보하는 친구들을 넋 놓고 바라보기만 했다. 그때 나는 무릎이 늘어난 청바지를 입고, 땀 냄새가 밴 후드티를 펄럭이며 땀을 식혔다.

2학년이 되어 방송국장이 되었을 때는, 죽지 못해 해내야 하는 것들로 넘쳐났다.

국원 수는 10명 남짓으로 불어났으나, 이제는 업무와는 다른 문제가 생겼다.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결국 여전히 글은 놓지 못한 어정쩡한 상태에서), 국장이 되어 이루고 싶은 일들도 많았다.

그러나 막연하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일들은, 그 위에 책임을 얹었다. 언제, 어느 날 없어질지 모르는 대학 방송국의 위기를 안고 있었다. 대학 방송국의 명맥을 잇고, 선배들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국장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과 기대는, 스물두 살의 내겐 너무나도 막중한 무게였다.

많이 울었다. 울면서 가장 친한 선배에게 힘듦을 털어놓았다. 나 때문에 대학교 방송국의 역사가 사라져 버릴까 두렵다고. 내가 이 국장 자리를 잘 이어갈 수 있을지, 방송국을 잘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선배는 내게 당근을 주는 대신 채찍을 썼다. 사회에 나오면 힘든 것들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선배는 내가 강하게 일어나기를 바라셨다.

마냥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 없었다. 이를 악물고, 악다구니로 버텼다. 1학년 때보다 날 새는 일이 수두룩하고, 새벽에 방송국 문을 나서는 일들이 허다했으며, 여전히 나는 방송국에 내 대학교 청춘을 바쳐야만 했다. 그랬지만, 1t의 눈물을 쏟아낼지언정 나는 버텨야만 했다. 왜냐하면 나는, 전통이 있는 한 집단이 사라지지 않게 지켜야 하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나는, "책임"이라는 무°‘가 얼마나 막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오랜만에 들어간 방송국은 생각보다 자그마했다.

모든 것이 거대하고, 크게 보였던 것들. 널찍한 공간이라고 느껴졌던 라디오 스튜디오, 창의적인 편집을 하기 위해 고심했던 편집실 컴퓨터, 지친 마음에 인디 노래를 들으며 위로를 받았던 콘솔, 충전한 배터리를 카메라에 갈아 끼우며 밖으로 뛰쳐나갔던 문. 뛰쳐나갔던 문이었건만. 몇 년의 시간을 거쳐 나는 뛰쳐나가는 대신,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후배들은 발음 연습을 한다며 입가까지 끌어올렸던 나무젓가락을 내려놓았고, 회의로 난장인 수첩을 덮었다.

그래. 이 녀석들도 언젠가의 나처럼, 얼굴에도 잔뜩 피곤함이 어려 있었다. 그러나 그 안엔 밝은 미소도 함께 담겨 있었다.

"얘들아, 케이크 먹을래?"

내가 국장이었을 때 선배는 내게 채찍을 쥐었지만, 나는 차마 그러지 못할 것 같다. 역사를 지켜나간다는 것, 그 무게가 얼마나 막중한지, 얼마나 힘든 자리인지 지금의 나는 잊지 않았으니까.


방송국에는 국원들끼리 서로 메모하며 소통하는 작은 소고록이 있다. 오랜 세월부터 전통을 이어왔던 소고록. 나는 그 소고록에, 작은 응원의 글귀를 새겨 넣었다.


나중에 돌이켜보면, 지금의 힘든 순간들도
아름다울 때가 올 거야.


지금 내가 후배들에 할 수 있는, 가장 따뜻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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