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장구 아저씨가 있었다.
벚꽃을 보러 간 공원. 그곳엔 축제가 한창이었다. 좋은 주말이었다. 비가 오지도, 바람이 불지도, 날이 덥지도 않은 딱 좋은 날. 벚꽃을 보러 간 곳이었기에, 장구 아저씨와의 만남은 예정에도 없던 것이었다. 작은 천막을 쳐놓고, 손님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계시던 아저씨.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훅, 그 적막한 매력에 끌렸다.
"아저씨, 저거 장구 얼마예요?"
천막 안에는 작은 장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2만 원이야!"
나는 2만 원짜리 장구보다도, 장구 아저씨의 모습이 더 끌렸다. 쇄골을 훌쩍 넘기는 긴 머리에, 잿빛 개량한복을 입은 채 부채질을 하고 있던 아저씨. 정말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인의 모습이었다.
장구 아저씨의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어쩌다 장구에 빠지게 되셨는지, 왜 장구를 만드시는지, 장구가 좋은 이유는 무엇인지. 어쩌면 현실과는 조금 먼 환상을 좇는 일이었으니까.
"하나 주세요."
결국 나는 2만 원이란 돈으로 추억을 사기로 했다.
장구 아저씨는 장구 만드는 일에 매력을 느껴서, 장구를 만든다는 장인을 따라 서울까지 쫓아갔다. 일 원 한 푼 받지 않으시고, 조수 겸 학생으로 장구 만드는 것을 배웠다. 그것만 꼬박 10년이란다. 그런데도 장구가 좋단다. 왜 장구가 좋으세요? 이유를 물으니 나도 잘 모르겠다, 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저씨는 한참 자신의 '장구 철학'에 대해 늘어놓았다. 그 철학이 생경했다기보다, 열성적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쏟아내는 아저씨의 그 모습이 신기했다. 나도 앞으로 계속 글을 좋아하게 될까. 언젠가 내게도, 누군가에게 나만의 '문학 철학'을 늘어놓을 수 있는 때가 올까. 나는 과연 가난하거나 힘들어도 평생 글을 쓰면서 살 수 있을까. 아저씨의 모습과, 어쩌면 먼 미래의 내 모습이 될 수도 있을 장면들이 겹쳐졌다. 그렇게 생각하자 아저씨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아저씨의 손을 보았다. 아저씨는 장구의 줄을 빳빳하게 조이고 계셨다. 손바닥에는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그것은 긴 세월, 아저씨가 꿈을 사랑한 흔적이었다.
아저씨는 칼로 장구통에 능숙하게 내 이름 석 자를 새기셨다. 나무 몸통에 붙은 부스러기를 털어내고, 잿빛 개량한복에 장구를 쓱 쓱 닦았다.
"아가씨는 하고 싶은 일이 있나?"
그때 불쑥, 아저씨가 내게 물으셨다.
"글쎄요. 예전엔 공부를 했는데, 요즘은 그냥 좋아하는 거 하고 있어요."
"좋아하는 거, 뭐?"
"글쓰기요."
내가 대답하자, 아저씨가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러더니 장구의 다른 한 편에 문구 하나를 새겨 넣어도 괜찮겠냐고 물으셨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梅一生寒 不賣香
"매일생한 불매향(梅一生寒 不賣香) 보통 역사 관련된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글귀야. 뜻은 '매화는 일생 추운 곳에서 태어나도 절대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아가씨의 꿈도 매화의 향기처럼 굳건하길 바라."
아저씨가 미소를 띠며, 내게 장구를 건네셨다.
매일생한 불매향(梅一生寒 不賣香)
매화는 일생 추운 곳에서 태어나도 절대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내 삶은 매화가 될 수 있을까.
좋은 글은, 사람들에게 좋은 향기를 남긴다. '매일생한 불매향'의 글귀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향기와 깨우침을 주는 글을 쓸 수 있을까.
매화 같은 글을 쓰자. 매화 같은 사람이 되자.
벚꽃 찬란한 봄날 햇볕 아래, 장구 아저씨를 보며 내 꿈을 한 번 더 꾹꾹 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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