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마

by 김희영

어제는 별안간 고구마가 먹고 싶었다. 밥솥으로 익힌 고구마가 간절해서, 그 볕 좋은 날씨에도 집에 콩 박혀 밥솥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텅 빈 밥솥. 쌀벌레가 살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내가 언제 밥을 해 먹었지? 취업하기 전엔 그래도 뜨뜻한 쌀밥 한 그릇 쉽게 먹을 수 있었는데. 친구네 집에서 열 몇 개 얻어온 고구마를 찬물에 씻는다. 누구는 천일염으로 씻어야 한다지만, 뭐 그렇게 유난 떨까 그냥 흐르는 물에 대충 씻었다. 쌀 씻고, 밥하고, 그 사이 밑반찬을 만들고, 다 먹고 난 뒤 설거지를 해야 하는 동그라미 속에 사는 것도 지겨웠다. 그래, 다이어트를 한다 생각하고 먹지, 뭐. 그저 그렇게 생각했다.

고구마가 익었다. 붉은 껍질 안에 노란 속살을 숨기고 있는 고구마를 나는 여지없이 크게 한 입 베어 물었다. 몇 개 입에 쑤셔 넣고 보니, 달달하고 느끼한 고구마에 김치 하나 척 얹어 먹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부랴부랴 냉장고 문을 열었다. 밥을 해 먹은 지 오래되었으니, 김치 녀석이 먹기 좋게 반찬 통 안에 들어가 있을 리 만무했다. 거대한 통 안의 김치 두 포기가 '나를 좀 먹어줍쇼' 하고 냄새를 풍겼다. 아, 귀찮다. 그런 생각이다. 차라리 김치 한 포기를 썰어 먹을 거였으면, 밥을 하는 게 나았지. 귀찮은 마음에, 그냥 도로 냉장고 문을 닫아버렸다.

세상에 이렇게 먹는 일을 귀찮아해서, 원.

가끔은 우리 집에 근사한 밥을 차려주는 요리사가 있으면 좋겠다. 요리도, 설거지도, 내친김에 방청소까지 모조리 다 해주고 갔으면 좋겠다. 자취하면 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걸까, 그래도 내가 상상했던 자취는 이런 게 아니었는데.

따사로운 볕에 바짝 마른 빨랫감을 보며, 건조대에서 애처롭게 '제발 나를 개켜줘!'라고 외치는 옷가지들을 보며 생각한다. 미안하지만, 난 지금 너희들을 돌보는 것보다 이 고구마 한 줌을 구겨 넣는 것이 더 급해,라고.

배가 부르지만, 뭔가 맛있게 배부르지 않는 녀석. 어쩐지 허한 내 주말의 한 조각이, 이 고구마란 녀석과 살짝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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