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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l 15. 2017

7월의 편지

※ 매거진 [notitle]에 한 달에 한 번 연재되는 편지 시리즈입니다.

@Pixabay


  to.


 2017년 7월 15일.

 날씨 : 엄청 더움.


 7월은 무기력의 계절이다.

 반 지하, 쇠창살이 탄탄하게 박힌 창문을 본다. 저번 주에 내린 폭우로 곰팡이가 누렇게 뜬 곳이 바작바작 타는 것처럼 보인다. 창문 앞에 직면한 아스팔트에서 아지랑이가 피어 오른다. 햇볕에 꾸덕하게 말라버린 지렁이가, 나뭇가지에 끼어 바둥대는 검은비닐 봉지가 꼭 내 마음같다. 축 늘어진 몸과 달리 마음 가짐은 잘도 나부껴 한편으로 사라진다. 오늘도 역시, 취업준비 중 휴식이란 명목으로 게으름을 부린다.


 무덥다.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다. 턱밑까지 타오르는 갈증은 얼음을 동동 띄운 물 한 컵으로는 도저히 이겨낼 수 없다. 그렇다고 에어컨을 켜자니 전기세를 폭탄으로 맞을 것 같고, 꺼두자니 내 인생 자체가 타버릴 것만 같다. 말없이 몸을 숙여 냉장고를 본다. 어젯밤 얼려 두었던 냉동실의 얼음도 이제 몇 개 남지 않았다.결국 참지 못하고 얼음 하나를 꺼내 문다. 어금니로 아작아작 씹는다. 아 덥다. 여름이 그저 덥기만 하면 다행일 것을, 더위는 모든 의욕을 앗아가 버린다.


 낮잠을 자는 동안 꿈을 꿨다. 어린 내가 웅크려있는 뒷모습, 쏟아지는 이력서와 불합격 소식, 그 사이 냉랭한 눈초리로 내려다보는 키 큰 어른들. 요며칠 미끄러지기만 한 소식 때문일 거라고 짐작하지만, 늘어진 몸뚱이가 마음을 닮아가는 것은 어쩔 수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부정한 등줄기 사이로, 굵은 땀방울이 흐른다. 이대로 있다간 몸이 말랑말랑하게 말라서, 건조대에 올려놓은 오징어가 되어버릴 것만 같다. 어디 슈퍼에라도가서 아이스크림 냉장고에 머리를 박고 얼음을 핥고 싶다. 주머니를 뒤져보니 오백 원짜리 동전이 서너개쯤 나온다. 땀으로 범벅인 손바닥에 동전을 그러쥐었다.


 지난 학기 때 내게 C+을 선물했던, 너덜너덜한 리포트를 집어 얼굴에 부채질한다. 개똥도 약에 쓸 때가 있다고 했다. 개똥같은 리포트로 땀을 식히며 문을 연다. 숨막힐 것 같은 더위가 온몸을 죄여 왔다. 리포트로 얼굴에 그늘을 만들어 어기적어기적 길을 걷는다. 길에는 정말이지 개미새끼 하나 보이지 않는다. 부채질하는 손이 더 빨라진다. 이마에 줄줄 흐르는 땀을 닦으며 해를 째려보았다. 아니, 정확히는 그냥 올려다본 것이 맞다. 해는 뜨겁고, 눈은 부시고, 살갗은 아팠다. 지독한 더위를 발산하는 해의 짓궂음을 어떻게 해버릴 수가 없다.


 슈퍼가 보인다. 이제 냉동고를 통째로 삼켜버릴 듯한 기세로 달려들기만 하면 될 일이다. 득달같이 달려들어 넌 내 거야! 찜 하려던 순간, 나는 어떤 작은 초등학생 남자애와 마주하고 말았다. 녀석이 머리를 냉동고에 집어 넣고 있었다. 야, 이 새끼가, 형님이오시는데, 머리 안 빼? 그러나 아등바등하는 녀석의 다리를 보자 차마 말을 뱉지 못했다.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모양새가 아니었다. 더워서 잠시 땀을 식히려는 것 같았다. 주머니 속에 넣어 둔 동전을 꺼냈다. 오백 원짜리 동전 서너 개가 전부다. 그때 내가 서 있음을 알아챈 남자애가 잽싸게 고개를 바깥으로 뺐다. 크고 맑은 눈망울이 나를 한 번 훑었다.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는 했지만, 세상은 가진 자들이 편하게 사는 법이었다. 나는 녀석이 비켜선 자리를 차지해선, 냉장고 속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숨을 깊게 들이 마신다. 폐 속 깊숙이 파고드는 찬기. 


 '아, 이럴수가. 세상에. 이렇게 시원할 수가.'


 몸 속의 더운 바람을 콧심으로 내뿜고, 냉장고 벽에 볼을 대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 마신다. 얼음을 씹어먹던 그 찰나의 쾌감과는 차원이 달랐다. 혼미해지는 정신을 붙들고, 애써 침착하게 아이스크림을 내려다 본다. 아이스크림이 눈데 잘 들어오지 않는다. 눈치껏 행동해야 한다. 슈퍼 아주머니가 역정내시기 전에, 꼬마 녀석이 저 자리라며 바짓가랑이를 붙들기 전에 일어나야 한다. 나는 냉동고 벽에 볼을 댄 채로, 고깔 모양의 비싼 아이스크림을 집었다.

 얼굴을 빼자, 다시 더위가 살갗을 급습해 왔다. 추위에 조여진 모공이 활짝 열리며 식은 땀을 다시 분출하기 시작한다. 덕분에 얼굴이 더 찝찝해졌다. 옆에는 아까 그 초등학생 남자애가 애처로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내가 집어 든 아이스크림으로 시선이 가있다. 아이의 이마에서땀이 홍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너도 참 불쌍하지. 그래도이 아이스크림은 내 거다. 가게로 돌아가 아이스크림을 계산하려 했다.

 그런데 이상할 일이다. 자꾸만 그 남자애가, 이름도 모르는 저 남자애가 자꾸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나는 계산하려다 말고 다시 아이가 있는 곳을 내다봤다. 아이는 이미 돌아서, 태양이 쏟아내는 화살을 맞고 가고 있었다. 아이의축 쳐진 뒷모습과 고깔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번갈아 보았다. 어딘가 익숙했다. 꿈에서 본듯한, 어린 나의 뒷모습.


 "야!"


 아이가 뒤를 돌아본다.


 "형이 아이스크림 사줄게! 이리와!"


 나는 비싼 아이스크림을 내려놓고, 막대 바 아이스크림 두 개를 집는다. 아이는 어리둥절한표정으로 내 앞에 다가왔다.


 "냉장고 앞에 알짱거리는 게마음에 걸려서 그래."


 가게로 돌아가 아이스크림두 개 값을 계산했다. 잔돈이 남지 않게 딱 맞아 떨어졌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녀석에게 내민다. 녀석이 말없이 고개를 꾸벅 숙인다


 "그래, 맛있게 먹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뒤돌아 아이스크림을 한입 베어 물었다. 한결 좀 낫다. 비록 냉장고 안에 있었던 것처럼 시원하지는 않지만, 고깔콘 아이스크림은 아니지만, 그래도어쩐지 소화가 되지 않는 것처럼 턱 막힌 듯했던 마음이 개운해진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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