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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l 06. 2017

괜찮아?


  내가 너에게 하는 어떤 말은, 어쩌면 단 하나의 효력도 없을지도 모른다. 눈오는 어느 날, 꽁꽁 뭉쳐놓은 눈뭉치를 벽에 내던지는 것처럼 쓸모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너에게, 너의 마음에 부서지지 못할 짧은 문장이라도, 자꾸만 던지고 싶다.


  "괜찮아?" 라는 말 말이다.


  '괜찮아?' 라는 말은, 충분한 위로를 주지 못할지도 모른다. 몸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만, 마음의 상처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곪는 법이었다. 안다. 상처가 굳어 단단해지고, 딱지가 지고, 흉터가 생겨서 결국 하나의 추억거리로 남는다고 해도 그 자리에 다시 상처가 생기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 그러나 아픔에도, '어른이 되어간다'는 멋진 문장 때문에 너와 나는 상처를 안고서도 꾸역꾸역 하루를 견디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애써 괜찮은 척, 아프지 않은 척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 어른이 됐다는 한 문장이 대체 뭐라고.


  실은 괜찮지 않다. 아프지만 아프지 않다고 말해왔고, 울분을 터뜨리면서도 두 번 다시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팠지, 정말 아팠지. 그러나 우린 내색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난 이렇게 아픈데, 내 아픔의 정도를 판단해 "괜찮아?" 고 묻는 건조한 물음이 화가 났을 것이다. 이제 더는 "괜찮아?" 라고 묻는 말이 듣기 싫은 위로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요즘엔 무성의한, 무감각한, 차가운 위로들이 가득하다. 상처의 깊이를 어림잡아 헤아리고, 가볍게 여겨 건조한 위로를 건넨다. 괜찮냐고 묻는 물음이, 정말 나의 안녕이 궁금해서 묻는 것인가 의문이 들기 시작한다. 그냥, 겉치레같은, 껍데기만 휘황찬란한 가식같은 말. 그래서 위로는 없어지고, 괜찮냐 묻는 말도 싫어지는 요즘이다.


  괜찮지 않은 일에, 괜찮냐고 묻는 말들에, 그 말들이 자꾸만 겹쳐 상처를 덧나게 하더라도. 그래도 나는 너에게 괜찮냐고 묻고 싶다.


  너 따위가 내 아픔에 대해 얼마나 아느냐고 소리질러도 괜찮다.

  다 아는 척, 세상의 모든 아픔 다 끌어 안아본 척한다고 비웃어도 괜찮다.


  그 괜찮냐 묻는 물음이 뭐가 그렇게 힘이 들어서, 우리는 위로에 멀어졌을까. 진심을 다한 위로라면, 데인 상처도 조금은 빠르게 치료될 수 있을텐데. 기분 나쁠 일도, 가식이라 느껴질 이유도 없을텐데.


  방향을 제시해주지 않아도 된다.

  어떻게, 어떤 식으로 살아야 한다고 조언해주지 않아도 된다.

  인생의 방향같은 거, 좌절을 딛고 일어서면 찾을 수 있을테니까.


  그냥 그 한마디면 된다.


  "괜찮아?"


  괜찮냐고 묻는 말이 왜 이토록 어려워 졌을까. 그 한마디면,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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