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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Aug 03. 2017

8월의 편지

※ 매거진 [notitle]에 한 달에 한 번 연재되는 편지 시리즈입니다.

@Pixabay


 to.


 좋았던 시절이었어요.

 서로 죽고 못살던, 그런 시절.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 다른 사회에 살면서 그런 시절도 점점 옅어졌죠. 헤어짐, 만남, 그리고 헤어짐. 이별이 계속되면서 우리는 조금, 둔해졌는지도 몰라요. 상처를 주고, 상처를 받는 일들에.


 저는 언제나 당신에게 닿고 싶었어요.

 당신은 제게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멀고도 가까운, 하지만 손끝에 닿을 수 없는 애매한 사이. 서로를 응원한다는 말 사이에서 갈등했어요. 다시 만나고, 다시 찢어지고. 숱한 만남과 헤어짐이 있었지만, 실낱같은 인연의 줄을 놓지 않았어요.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고, 그랬기에 저는 이 어중간한 만남을 이어왔던 것이겠죠. 어쩐지 우리의 만남은 늘 이상했어요. 내가 닿으려고 발버둥칠 때는 상냥하지 않더니, 이제 내가 정이 떨어져 도망치니까 그때서야 당신이 나를 붙잡아요. 아이러니하죠. 사랑은 이상해요. 꼭 서로가 동시에 사랑할 순 없는 건가요? 언젠가 애틋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애틋하다 말할 수 없어요. 어떻게 보면 치졸해요, 우리. 결국은 서로가 힘들 때만 찾았으니까요.


 퇴근하고 집에 들어왔어요. 이제 저는 어린아이처럼 제 방을 어지르지 않아요. 밥도 꼭 집에서 해 먹고, 빨래도 청소도 미루지 않아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당신을 만나지 않기로 다짐한, 그 이후부터요. 이제 오롯이 저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어요. 당신을 떠올리는 그리움 따위도, 이제 점점 횟수가 줄어가요. 아뇨. 내가 언제 당신을 그토록 그리워했었나 생각이 들만큼, 이제 기억도 가물가물해요. 난 그저 똑같은 저녁 일상을 보낼 뿐이에요. 이렇게 앉아 빨래를 개키고, 청소를 하고, 홀로 밥을 먹죠. 이젠 익숙해요. 당신이 없는 삶이.


 그런데 있죠.

 당신의 삶을 송두리째 들어낸 내 가슴이요. 구멍 난 지붕처럼 물이 새요. 허한 마음은 밥을 먹어도 채워지지 않아요.


 당신의 기억을 써 내려갔던 다이어리를 펼쳐요. 글쎄요. 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한 것은 아니에요. 다이어리는, 이제 더는 애잔한 마음 같은 것도 없어요. 그렇게 그리게 된 마음도 증발해버렸는걸요. 다만, 가슴이 아플 뿐이에요. 타이밍이 엇갈려서, 혼자 괴로워한 시간들의 기록이 보여요. 내가 홀로 당신을 그리워했던 날처럼, 내가 당신을 향한 마음이 차갑게 식었을 때 당신도 괴로웠겠죠. 아뇨, 어쩌면 괴롭지 않았으려나요.


 나이가 들어, 어른들이 만나는 사랑은 그런 건가 봐요.


 당신이 그립다고 말하지 않겠어요. 저는요. 철없이 당신이 좋아 좇아 다니던 시간들이, 저는 시절이 그리워요. 잠깐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뾰로통해지고, 단 일 분이라도 당신을 보지 않으면 한숨부터 나오던 그 시절 말이에요. 항상 보고 싶은 사람이었죠, 가슴에 가둬 놓고 나 혼자 간직하고 싶은 사람이었죠. 그랬는데. 좋았던 우리, 왜 이렇게 변해버렸을까요.


 우리. 이제 각자의 삶을 살기로 해요.

 당신은 당신대로, 나는 나대로. 이제 내 삶에 당신을 내보낼래요.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이, 그때의 절절했던 사랑을 저버리게 했어요. 나는, 그래요. 이제 이 반복되는 동그라미를 자르고 싶어요.


 좋은 사람 만나요.

 당신은 내 인생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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