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거진 [notitle]에 한 달에 한 번 연재되는 편지 시리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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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농땡이 시간의 절반이었던 작은 방. 흰색 커튼과, 흰색 베드와, 흰색 붕대로 백색의 잔치를 부리던 그곳엔 내 서툰 거짓말의 흔적이 있었다. 몇 주 전,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기숙사로 부리나케 뛰어가던 길. 그 길, 어두운 계단을 굴러 인대를 다친 이후로, 체육시간이면 찾았던 이 작은 방을 애들은 농땡이의 방이라고 불렀다. 농땡이의 방, 다른 말로 양호실. 인대가 늘어나면 자꾸만 삔 곳을 계속 삐게 된다고 해서, 하릴없이 양호실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허공에 펄럭이는 커튼, 그 사이에 낀 낱알의 먼지들이 공기 중을 부유하며 날아다니는 것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도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얌전하게 무릎을 모아 앉던 다리도 널브러졌다.
네가 보건실로 달려든 것은 그즈음이었다.
학교 밖, 체육대회가 있던 날이었다. 새빨개진 얼굴, 땀으로 얼룩덜룩 젖은 등, 절뚝거리는 걸음. 축구를 하다 넘어졌다고 했지만, 종아리 전체가 쓸려선 피가 범벅이었다. 양호실 선생님이 소독을 하고 약을 발라 주셨다. 약간 현기증 증상이 있는 것 같다고 너는 말했고, 양호실 선생님은 잠시 쉬어가라고 하셨다.
너의 친구들이 돌아가고, 양호선생님도 자리를 비운 즈음.
나는 문득 내 발목의 붕대를 내려다 보았다. 너무 새하얗고 깨끗한 나의 붕대와 달리, 너의 다리는 붉은 핏빛으로 난장이었으니까.
"넌 여기 왜 있어?"
너의 물음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는 내 발목을 보고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인모를 민망함에 휩싸였다. 별로 아프지도 않은데, 양호실에 주욱 눌러앉아 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나는 한참 뜸을 들이다 너에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듯이, 발목이 정말 심각해서 걸을 수도 없다는 듯이. 거짓말이 거짓말을 덮었고, 허언은 점점 백색의 양호실에 쌓여갔다.
진지하게 듣던 너는 갑자기 불쑥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모습에 얼굴이 새빨개지고 말았다.
나는 아직도 그 가을날, 너를 만난 양호실을 잊지 못한다.
진지하게 듣던 너의 표정도, 웃음이 터져버린 너의 미소 때문도 아니었다.
"너 정말 많이 아팠겠다."
얼얼한 상처를 안고 있으면서도, 내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건넸던 너의 목소리 때문이었다.
그게 퍽 부끄러워, 거짓말로 치장하는 짓을 그만 두기로 했다. 이제 더 이상의 거짓말은 필요가 없었으니까.
그때의 넌,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난 가끔 가을날의 양호실을 그린다.
진부한 일상에 축축이 젖은 오늘에 너의 목소리를 만난다면, 다시 바짝 타오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립다, 어린날의 양호실.
보고싶다, 오늘의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