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거진 [notitle]에 한 달에 한 번 연재되는 편지 시리즈입니다.
to.
신님.
아니, 신이시여.
당신이 만약 내 인생을 가지고 노는 것에 재미가 들리셨다면, 단전 밑부터 복받친 울분을 터뜨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으렵니다. 누구보다 진지하게 살고 싶기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당신께 기도를 올립니다.
저는 수개월, 아니 수년의 시간 동안 '취준생'이라는 죄목을 달고 살아왔습니다.
내 나이 끝자락에 달린 콩나물은, 아홉수를 뜻함과 동시에 내년이면 앞자리가 바뀐다는 현실을 깨닫게 합니다. 스물아홉. 어딘가 직장을 잡던지, 자립을 하던지 해야 할 나이입니다. 그러나 부모님 댁에 살면서, 자식이 아닌 식충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니 취업 불황기 같은 요즘 같은 때에 긴긴 연휴가 그저 거북하기만 합니다.
제가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었습니까.
아랫사람에게 못되게 굴었습니까, 아니면 새치 혀로 나랏일을 그르치게 했습니까.
내 전생에 "혀"로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주변의 혀로부터 상처받게 만드십니까. 그리고 어찌 이리 저를 방치해두신단 말입니까.
이만큼 더 할 수도 없습니다.
십 년의 세월입니다. 책은 연필 자국으로 까맣고, 쌓으라는 스펙 이력서에 꽉꽉 채워 넣었습니다. 십 년을 거의 하라는 대로 맞추었더니, 이제는 스펙이 전부가 아니랍니다. 명문대 졸업에 900점에 달하는 토익점수, 갖가지 숱한 자격증. 이제는 제가 무엇을 더 해야 하나요. 흘러버린 시간과 나이가 문제인가요. 지나쳐버린 시간들은 제가 어찌 되돌릴 수 없는데, 만약 과거를 지나쳤던 저의 모든 노력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저는 무엇을 해야 하나요.
언제 취업하느냐고, 공부만 할 거냐고, 주변에서 들 그럽니다.
그것은 질문이 아닙니다. 힘내라고 한마디 할 수 있는 것을, 사람들은 위로에 야박합니다.
만약, 신이라는 이름. 당신이 존재한다면, 제가 하는 이 기도와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죠.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일이 하고 싶습니다. 저도 부모님 앞에 떳떳이 정장을 입고 나타나 첫 월급봉투를 드리고 싶습니다. 꾀죄죄한 몰골로 거실을 누비는 자식이 아니라, 누구 앞에 내놔도 남부럽지 않을 멋진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번듯한 직장과 돈이 전부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어쩝니까, 제게는 이것이 전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꿈이요, 열망이요? 제 꿈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어디든, 어느 직장이든 속해서 출근길 만원 전철 안에 끼어 가는 직장인이 되는 것. 퇴근 후 포장마차에서 동료와 술 한 잔 기울이는 환상을, 저는 그것을 꿈꾼단 말입니다.
그 어떤 종교도 믿지 않던 제가, 오늘부터 감히 당신을 믿어보려 합니다.
정말 당신이 존재한다면, 제 이 마지막 기도를 들어주세요.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기도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