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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

할아버지와 개

by 김희영


눈이 내리니?

그래, 눈이. 눈이 오는구나.


이제 내 몸이 한계인 것을 느낀다. 예전 같지 않아. 숨도 거칠어지고, 이제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일어날 수조차 없어. 나는 사람들의 눈빛으로 내 죽음을 예감했다. 안다. 이제 이 병상에서, 내 인생의 마지막 장이 쓰일 것이란 걸.


아가.


눈을 보니 부쩍, 오늘따라 할멈 생각이 나는구나.

그녀는 겨울을 참 좋아했지. 눈이 새하얗고 예쁘다고. 시리고 추운 것은, 그녀의 따뜻한 마음을 얼리지 못했다. 내가 그 미소에 반해 이날 이때껏 그녀를 잊지 못하고 산 것 아니었을까.


내 곁에도 언젠가, 평생을 함께 할 것 같은 사람이 있었다.


네가 어려서 이 집에 오던 날이었지. 백발의 노인이 되어서도, 나는 그 사람과 영원히 함께할 줄 알았다. 영원한 이별을 하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우리는 같은 날, 같은 한 시에 두 손 꼭 잡고 이 생을 마무리할 줄 알았어. 그러나 그것은 나의 욕심이었나 보구나. 그녀는 곱고 아름다웠다. 나이가 들어 얼굴에 주름이 생겨도, 검은 머리에 하얀 눈이 내려도 나는 눈에 그녀를 담고 싶었어. 침대에서 마지막 숨을 내뱉은 것을 보고 나서야, 나는 그때야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평생 그녀 앞에서 울어본 적이 없었어. 그만큼 그녀는 내 마음을 편안히 해주는 사람이었다.


줄곧 혼자일 줄 알았는데, 그래서 이 긴 밤을 어찌 혼자 보내야 하나 막막했는데. 그래도 네가 곁에 있어서 내가 얼마나 든든했는지 모른다. 아가. 이 할아버지는 이제 여기가 끝인가 보다. 눈 앞에 할머니 모습이 보여. 자꾸만, 자꾸만 내게 손짓을 하는구나. 다시는 울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제는 또 주책 맞게 눈물이 흐르는구나. 꿈에서만 볼 줄 알았는 걸, 그녀는 내 눈 앞에 생생히 서있다. 생은 지겨워. 사는 게 낙이 없다. 아가. 나는 이제, 이제 그녀에게 닿고 싶다.


이제 너도 나이가 들었지. 곱고 하얬던 털이, 이제는 뻣뻣하고 숱이 없어. 통통했던 살도 다 빠져서 야위었구나. 내가 그녀와 함께 떠나지 못했으니, 나는 너와 함께 인생을 마치고 싶은데. 하지만 이 생의 삶은 정해져 있어. 내가 널 데려가고 싶어도, 데려갈 수가 없구나.


내가 널 거두지 못하면, 누가 너를 거둘까. 내가 널 돌보지 못하면, 누가 널 돌볼까. 너를 이 곳에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메여, 내가 가는 길에 자꾸만 돌아보게 될 것 같은데. 울지 말거라. 너도 아는 거지, 우리가 이렇게 영원한 이별을 하게 될 거라는 걸. 어디서 밥 거르지 말고, 좋은 주인 만나 행복했으면 좋겠구나.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고맙다.


남은 생, 버려진 내 인생 곁에 있어줘서.

끝까지 네 곁에 있어주지 못한 나를 용서해 주겠니.


천천히 오너라.

네가 오는 방울 소리가 들리면, 버선발로 그 앞에 쫓아 달려가겠다.


아가, 꿈에서 만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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