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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31일

『나의 아날로그에게』84쪽

by 김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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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이 된 세상에서 당신이 활짝 웃는다. 모두가 멈춘 시간에서 우리만 살아 숨 쉬고 있다. 나는 한참 당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미래에는 우리가 이별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자, 당신의 얼굴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왜 우리가 이별하느냐고 묻는다. 당신의 우는 얼굴이 꼭, 훗날의 내 얼굴 같다.

이별과 악수하지 않을 것 같던 사랑이, 평생 사랑하며 서로 안아줄 것 같던 우리가, 정반대로 찢어지게 되었다. 먼저 등을 돌린 건 당신이었고,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온 건 나였다. 이렇게, 과거의 당신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있다.

"미안해,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

나는 당신에게 거짓말을 했다.

당신이 떠나지 마라며 내 손을 붙잡는다. 그 눈물이 간절해서, 나도 여전히 당신이 좋아서, 나는 아

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눈물만 닦고, 또 닦았다.

'떠나지 마' 내가 당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다.

'다 내가 잘못했어' 나야말로 당신을 정말 붙잡고 싶었다. 미래의 나도 그랬고, 지금의 나도 그렇다.

흑백의 세상에서 내 손을 붙잡고 우는 당신을 모질게 할 수 없어서, 나는 몇 번이나 당신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미안해, 우리가 그렇게 돼. 운명이 그렇대."

상실에 빠지기 싫었던 나는 흑백의 세상에 언제고 귀속되고 싶었다. 나를 간절히도 사랑하는 당신의 세상에 묶여, 이 우주에서 당신과 함께 있고 싶었다. 그러나 운명은 애석하게도, 당신과 나의 온전한 결합을 허락하지 않았다.

나를 처연하게 사랑했던 당신은 과거에 멈춰있고, 나만 현실로 달려 나와 참혹하게, 홀로, 사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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