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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62일

『나의 아날로그에게』152쪽

by 김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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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아.

언젠가 나는 죽어도 좋을 만큼 너를 사랑했었다. 거리가 멀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을지라도, 내 몸 다해 노력하면 너에게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었다. 너는 조금씩 나를 받아들일 준비를 했고, 나 또한 그렇게 천천히 너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름아.

나는 가끔 우리의 찬란했던 밤들을 떠올린다. 밤새 전화를 붙잡고, 네가 보고 싶다고 몸을 비틀던 새벽이 나는 그립다. 그땐 그 시간들이 참 괴로웠는데, 왜 지금은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걸까. 어린아이처럼 떼쓰지 않고 의연하게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나의 모진 행동들로 너를 지치게 만들어버린 걸 후회하는 걸까.


이름아.

조급한 내게 느긋함을 심어줬던 너야말로, 많이 힘들었던 게 아닐까. 태우지 못한 옛 사진을 들춰보며, 아련한 네 모습을 잊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가 이젠 힘들다. 나는 몇 달을 널 찾아 헤매고 있는데, 이제 너는 날 잊어버린 게 아닐까, 나는 가끔 그런 것들로 괴로운 밤을 보낸다.


이름아. 부를 수 없는 이름아.


그래도 언젠가 넌 나를 사랑했을 것이라고, 난 애써 그렇게 되뇔 뿐이다. 다만 난 네가, 어디 아프지 않고 그저 건강하길 바란다. 네가 날 지우고서 비로소 속 편히 하루를 달려 나갈 수 있게 되었다면, 나의 비참한 새벽쯤은 괜찮다. 내가 없음으로 네가 홀가분해졌다면, 이제 나는 괜찮다.


그러니, 이름아.

어딘가에 살고 있다면, 부디 내게 한마디만 해주지 않으련.

날이 선 안부래도 잘살고 있단 한마디만 전해주지 않으련.


그럼 내가 칼을 삼키는 마음으로

오늘날 새벽을 아프게 떠안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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