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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월 67일

『나의 아날로그에게』164쪽

by 김희영

괜찮아.

너 없이 걷는 시간은 아프겠지만, 괜찮아.

그래도 가끔 네가 보고 싶어서

참을 수 없는 날이 있어.

괜찮았는데, 아주 가끔은, 괜찮지 않을 때가 있다.


하얗게 부서져 바닷바람을 타고 너울너울 떠난 널

어디로 가야 만날 수 있을까.

수평선을 달리면 끝에서 만날 수 있을까.


다시 돌아오겠다고 해놓고 말없이 떠나버린 게

행복해서 아픈 추억만 만들어 놓고 간 게


다 이유 있는 것들이었다면

돌아오라고 말하고 싶어.


우리가 계속 함께였다면 지금 웃고 있을까, 울고 있을까.

타고 간 바람 따라 돌아와. 새하얗게 부서지지 말고, 뜨거워지지 말고, 차갑게 있어. 네 입술에서 도망친 생기를 잡아넣고, 편안하게 다시 눈을 떠. 파리하게 야윈 피부는 부풀리고, 꺼진 심장에 힘을 줘. 그래, 그렇게 다시, 일어나 보면 안 될까.

붉은 입술로 내 이름 한 번, 다시 불러주면 안 될까.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한다고 한 번, 다시 말해주면 안 될까.

속 썩일 일만 만들어서 너에게 미안했다고 말하는 내 목소리에 한 번, 귀 기울여주면 안 될까. 안 될까, 다시.

미안해. 이런 욕심, 다시 부리지 않기로 했지.

넌 오래전 떠났는데 이 욕심은 도무지 버려지질 않네.


괜찮아.

너 없이 걷는 시간은 아프겠지만 괜찮아.

그래, 괜찮아, 하고

내 그리움 맴돌고, 또 맴돌아

네가 하얗게 사라진 수평선을 달리고 싶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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