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날로그에게』174쪽
고요가 쌓인다
먼발치서 들려오던 발소리는 재가 되어 날리고
눈앞에서 목소리가 일렁이더니 이내 타들어 간다
어둑한 밤에 새까만 눈동자는
어둡다기보다 빛이 나서
나는 한참 그 눈을 바라보았다
어디에 있었냐고 묻는다
왜 이제야 왔냐고 묻는다
가슴에 묻었던 널 다시 꺼내는 동안
죽어있던 널, 차가웠던 널 다시 살리는 동안
침묵이 쌓인 너의 마른 어깨를 만지는 동안
나는 쉴 틈 없이 네게 묻고 또 묻는다
내가 보고 싶지 않았느냐고
긴 세월 내가 흘린 눈물에 축축이 젖은 너는
옷깃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기를 그러쥐며
낮게 속삭인다
너는 또렷한 눈빛으로만 남아
내 온몸 가득 너의 향기와 채취만 묻히고 간다
네가 묻히고 간 그 느낌이 너무 슬퍼서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울었다
보고 싶었어, 그리웠어, 진심으로 사랑했어
나는 이 침침한 어둠에 갇힌 채로
너의 그 한마디만을 내내 기다려왔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