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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n 30. 2020

13월 79일

『나의 아날로그에게』193쪽

 밤이 깊으면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

 그렇게 미워하고도, 밀어내고도 차마 잊지 못한 어떤 이름은….

 유성으로 박힌 그 이름은, 찬물을 끼얹어도 박박 문질러도 닦이지 않는다. 무섭다. 평생 그 이름을 잊지 못할까 봐.

 길을 걷다 보면 가끔 그 이름이 형상으로 튀어나오는 상상을 한다. 그가 있는 힘껏 나를 껴안고 머리칼을 어루만져 주는 상상을 한다. 나는 그날을 기다리고 있다가도, 한 편으로는 그날을 두려워한다. 눈앞에서 그를 마주하면 어떤 기분일까. 좋았다가, 이내 다 망가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없이 잘 살 것이라고 다짐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져버릴 것만 같다.

 이젠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 그를 만나고 싶은 건지, 아닌지. 혼자 살 수 있을지, 없을지.

 기다리지 않기로 했으면서 가슴에 적은 이름을 어루만지는 나는 진실하지 못하다. 눈을 비비며 못 본 체한다. 그렇게 거짓말에 익숙한 밤을 덮고, 개켰다가 또, 덮는다.

 골목에서 그를 만나는 꿈으로 긴 밤을 긁는다. 서러운 꿈을 끌어안고 애통함에 저며 겨우, 겨우, 잠에 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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