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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Oct 29. 2021

사랑에 대하여

은근한 일기

  사랑의 편린은 광활한 은하의 압축이었다. 유리조각처럼 반짝거리며 밤하늘을 수놓던 다양한 눈물의 결정체는 사랑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빛을 발했다. 사랑에 대해 그저 아름다운 것이라고 읊조리기에 사랑은, 무척이나 잔인한 계절이었다. 언젠가 당신에게 뜨겁게 내뱉고 싶던 사랑의 고백은, 혀 밑에 가시가 숨은 것처럼 입을 벌렸다 오므리게 만들곤 했다. 그토록 내게 사랑이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묵직하고도 아린 우주였다.

 감정이 물결치는 사랑이란 계절에 차마 눈을 뜰 수 없었다. 눈을 뜬다는 것은 어쩌면 사랑을 보지 않는 행위이자, 아득히 깊은 겨울 바다에 뜨거운 몸을 퐁당 빠뜨리는 것이었다. 그러니 아득한 사랑고백을 종용하는 그대의 말에 대해 섣불리 마음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사랑으로써 얻는 온전한 나의 아픔과 당신을 향한 그리움과 그 사이 뜨거운 감정을 오롯이 토해내기가 힘겨웠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가 그저 옹졸하게만 느껴지던 새벽, 나는 입 안에 고이는 침만 꿀떡꿀떡 삼킨 채, 밤을 지새워야만 했다.

 겨울철, 눈발을 피해 나무 밑으로 피신하는 은둔한 여행객처럼, 사랑은 한편으로 춥고 외로운 여정이었다. 함께 손을 잡고, 마주 보고, 뜨거운 두 입술을 맞닥뜨려야만 사랑인 것은 아니었다. 형용할 수 없는 애정은 다섯 가지 감정이 혼재돼 있었다. 그러나 이 깊고 복잡한 감정도 시간이 흐르면 무뎌질 거라고, 언젠가 당신이 말했다. 그 '언젠가'에 묻은 아련한 부정이 지난밤 내내 생각의 발밑에서 졸졸 흘러갔다. 당신을 향한 지금 내 마음은, 그렇게 쉽게 저버리는 사랑이 아니라고. 머리를 뒤흔들고, 가슴을 쥐어뜯게 만들어 놓는, 밤새 몸살을 앓는 것처럼 자꾸만 떠올리게 되는, 당신과의 사랑은 그저 평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당신은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웃음이 내 사랑을 폄하하는 것처럼 느껴져 속상했다가도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이 첫 마음을 끝까지 간직하겠노라고. 그러자 이제 그 '끝'이라는 말이 나를 서글프게 만들었다.

 당신과 나의 사랑에도 끝은 오는 것일까. 이 드넓은 나의 우주가 한순간 폭발로 소멸되어 버리고 마는 것일까. 그것은 싫다. '끝'대신 '평생'이라고 말을 고쳤다. 미소 짓던 당신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왜 그러느냐, 나와 평생 같이 있자, 우리 서로 곁을 떠나지 말자. 어린아이들의 약속처럼 힘 빠진 당신의 새끼손가락에 나의 새끼손가락을 걸며 말했다. 당신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작은 사랑의 조각에도 수많은 감정이 일렁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사랑을 내려놓고 싶다가도, 또 어떤 하루는 당신이 그리워 미칠 것 같다가도, 또 어떤 날은 마주 건 새끼손가락처럼 평생을 약속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이걸 사랑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어쩌면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당신이 여태, 내게 듣고 싶어 했던 그 달콤한 '사랑한다'는 말을, 이제는 조금씩 뱉어낼 수도 있지 않을까.

 다만, 나는 당신이 나의 늦은 고백으로 인해 지쳐있지 않길 바랐다. 힘없이 웃는 미소에 그래도 조금 버티고 있음을 의미한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면, 나는 당신에게 용기 내어 이 깊은 마음을 털어놓고 싶다.

 당신을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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