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영 Dec 30. 2021

오늘도 힘겹게 버텨 나가는 너에게

 우리 모두 숨 쉬고 있던 거잖아. 우리의 세상에선 죽어 없어지는 영혼 따위 없었잖아. 모든 게 생시 같던, 우리 모두 염원하던 꿈을 향해 맹렬히도 돌진하던, 하나의 거대한 돌풍처럼 우리는 살았잖아. 그 틈 속에서 지쳐 죽지 않기로 약속했잖아. 마구잡이로 잡아 부수는 바람 사이에도 서로 내린 뿌리를 맞잡기로 했잖아. 긴긴 세월이 소중히 일궈온 열매와 잎사귀를 흩트려 버린대도, 우리 끝까지 살아 있기로 했잖아. 우리, 그랬잖아.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고 했던 건, 비바람이 몰아치는 어느 밤에 시작됐지. 땀인지 눈물인지 모를 얼굴을 서로 닦아 대면서, 포기하지 말자고 되뇌던. 그 속삭이는 새벽은 춥고도 찬란해서 오묘하기만 했던. 이런 계절에도 우리 뜨거운 마음을 지켜낼 수 있을까 의아해하면서, 그래도 살아내자고 다짐했던 밤이었지. 삶에 대해서는 우리 모두 무지했고, 우리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어. 그저 임무를 부여받은 어느 수행자처럼, 차갑게 얼어붙은 땅 위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입김을 간직할 뿐이었지. 우리 모두는,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집착하며 살기로 맹세했었어.

 하나 둘 다짐했던 마음의 살점들이 떨어져 나갈 때 즈음, 우리는 점점 죽어가기 시작했던 것 같아. 혹한기 겨울의 칼바람 속에서도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길 간절히 소망했지. 하지만 이제 더는 견딜 수 없다는 걸 알아. 우리가 염원하는 것만큼, 세상은 그렇게 간절하지 않았으니까. 누구 하나 추위에 견디다 못해 죽길 기다리는 것처럼, 세상은 그저 냉혹하기만 했으니까. 이제 눈물 흘리는 것도 부질없다는 걸 알았어. 그런 감정 소모가 이 불편하고도 아픈 마음들을 치유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 각자가 가진 우주에 온 마음을 실어놓고, 우리는 고통의 침묵 속에 갇히기 시작했어. 이제는 버티는 것만이 답이었지. 꿈을 지켜나가는 일이 그랬어. 그렇게 고독하고도 아픈대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아름다움으로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일. 그 잔혹한 동화 사이에서 꿈을 지켜나가는 일이란,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만큼이나 참담하기 그지없었지.

 그 고통을 알기 때문에 숨이 멎어가는 너의 영혼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 다만, 나는 계속 비바람이 몰아치던 그날의 밤을 상기할 뿐이었어. 우리, 그렇게 처절하게 맹세했었는데. 괴로운 날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쳐도, 꽉 잡은 두 손은 놓지 않기로 약속했었는데. 조금씩 지쳐가는 네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고 찢어졌지만, 어느 순간 나도 너의 모습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되었어. 나도 너무 힘들고, 지치고, 하루에도 몇십 번씩 이 마음을 놓고 싶었는지 몰라. 꿈이란 것도, 마음이라는 것도, 다짐이라는 것도 현실 앞에서는 그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생명 같은 것이었다는 걸. 언제든 커질 수도 있고, 소멸할 수도 있다는 걸. 그 마음을 잘 타일러 이끌어나가는 게 힘들다는 걸 우리는 그땐 몰랐던 거야. 그저 열심히, 꾸준히 버티기만 하면 금세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겨울이라는 계절이 이토록 길어지게 될 줄, 우리는 몰랐던 거야.

 이겨낼 수 있다는 거짓말은 하고 싶지 않아. 나도 우리의 앞날을 모르겠어. 하지만 이토록 불투명한 미래라도 버티며 살아가야 한다면, 너와 함께 버텨나가고 싶어. 너 없는 하루들이 쌓여갈수록 나도 점점 지쳐가게 될 거야. 우리, 몸도 마음도 닳아져 가는 인생이라도, 꼭 함께 버텨 나갔으면 좋겠어. 우리가 그토록 염원하던 것들, 아주 먼 미래에 닿게 된다고 할지라도, 나는 우리가 함께 버텨갔으면 좋겠어.

 내가 무척 힘들 때면 네가 정말 보고 싶을 거야. 빠듯하기만 한, 넉넉지 않은 하루 중에도 틈틈이 네 마음을 떠올릴 거야. 그렇게 너를 떠올리는 일 만으로도 네가 곁에 있는 것만 같아. 네가 정말 보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가 서로에게서 멀어져 갈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