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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Dec 29. 2021

우리가 서로에게서 멀어져 갈 때

 빈틈은 언제든 벌어질 수 있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도 아니었다. 조금씩 틈이 보이기 시작했을 때, 너와 내가 언제든 멀어질 수 있겠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생각 자체가 우리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준비된 이별은 표면적으로 드러나 보이곤 했다. 그게 어떤 날은 상처이기도 했고, 체념이기도 했고, 일상이기도 했다.

 언젠가 우리는 좋은 감정으로 눈물짓던 날들이 있었다. 노을 지는 강변에 앉아, 금빛 물결 출렁이는 지상의 은하수를 보았을 때가 생각난다. 그저 그 광경을 함께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먹먹해졌다. 두 손에 그러쥔 맥주 한 캔 때문이 아니라, 그 배경 속에 녹아있는 우리의 모습에 취해있던 건지도 몰랐다. 풍경 속에는 우리가 만들어낸 사랑의 변주곡이 흘렀다. 자연의 새소리, 뛰노는 아이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넉넉한 마음으로 물결치는 강물의 소리. 모든 소리들 사이에서, 우리는 고요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눈에 담은 별빛과 금빛으로 물든 너의 옆얼굴이 이 사랑의 연주곡에 완성이었던 것을. 그 따뜻하고 찬란한 배경 안에 봄바람처럼 불어 네 어깨에 기대었던 것을. 손을 포개어 잡고는 반들반들한 엄지손톱을 매만지곤 했던 것을. 우리는 사랑으로 품던 우리를 아득히 먼 과거 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서로에게서 멀어져 갈 때가 있다는 것을, 그때의 우리는 예견이나 했을까. 이런 은근한 사랑에도 끝이 있다는 걸, 너와 나 사이에도 벌어지는 간격이 존재하리라는 걸, 상황이 아니라 서로의 감정이 변해 상처를 주게 될 것이란 걸. 그때의 너와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이 잔잔한 사랑의 변주곡이 휘몰아치는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는 걸.

 서로 다른 이해관계로 지쳐 흘러내릴 때 즈음, 나는 처절하게 그 순간들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우리는 모두 가슴 아프게 사랑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순간 속에서 우리는, 뼛속까지 찌르는 가시를 품고서도 활짝 웃고 있었다. 말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아주고, 찢어진 마음을 꿰매 주고, 얼어붙은 몸을 뜨겁게 안아주었다. 차츰 뜨거워지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차가운 두 손을 꼭 붙잡아 주었다. 우리만큼은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끝까지 이 사랑 지켜 나가자고, 지금처럼 매일매일 아프지만 행복한 눈물을 닦아 나가자고.

 우리의 사랑의 온도가, 그 따뜻했던 행동들이 미지근하게 식어갈 때 나는 오히려 눈물을 흘릴 수 없었다. 행복하다고 여겨야만 비로소 터지던 눈물은, 되려 처참한 이별 속으로 고꾸라지는 상황에서는 잠잠했다. 눈물이나 분노 같은 감정들은 오히려 우리가 더욱더 치열하게 사랑했을 때에만 터지는 것이었다는 걸. 우리가 서로에게서 멀어져 갈 때는 감정이라는 것도 다시 얼음장처럼 차가워지고 마는 것이었다는 걸. 그렇게 조금씩, 우리가 붙잡았던 뜨거운 손을 놓기 시작하면서부터 깨닫게 되었다.

 언젠가 희망과 사랑이 가득한 강변에서 우리가 사랑을 연주할 때, 그 찬란하고 풍성한 온도 사이의 우리를 떠올려본다. 그때 우리 참 좋았는데. 얼굴을 바라보기만 해도 눈물이 흐르곤 했었는데. 내가 널 이토록 많이 사랑했었는데. 네 얼굴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무치게 널 안고 싶었는데. 그 모든 감정들이 지나버린 차가운 추억 속에 갇히게 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그 안타까움이, 우리의 관계를 엉성하게나마 꿰매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지금 내가 널 사랑하지 않더라도, 널 사랑해 죽어도 좋았던 날들만을 떠올리며, 그렇게도 절절하게 이 사랑을 보존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내 온 마음과 영혼을 녹여, 네 어깨에 기대 사랑을 노래하던 그때를 지키고 싶어서. 어쩌면 내가 아직 널 잊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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