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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Dec 28. 2021

널 사랑한다고 했지만

꿈속에 별빛은 그리움을 따라 걸었지만
나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네게 갈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

이런 마음인들 어쩌겠어
다시 네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알고
별빛을 지운 깊은 밤을 자야지

- 책 <혼자 남겨진 시간> 중에서 


 단지 나는 사랑받고 싶었을 뿐인데, 지금 생각해보니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선을 긋게 됐던 건, 혹여나 너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삶을 살아오면서 숱하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고, 상처를 받았다. 상처뿐인 이별을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너에게 애매하게 드러내 보인 마음에는 아주 불친절한 관심이 비쳤다. 그 관심은 착각과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서로의 마음을 건드리는 호기심을 순수함으로 부르기에는, 너무 많은 삶을 지나쳤다. 그 지나친 삶에는 아찔한 인연도 있었고, 가슴 아픈 사랑도 있었고, 분노케 하는 이별도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결말 뒤에는 찢어진 상처만 남았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널 붙잡을 수도 없었다. 이제 우리는 한두 살 먹은 어린아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선택에는 책임이 따랐다. 내가 너의 마음을 붙잡는데도 충분한 설명이 필요했다. 단순히 사랑한다는 말만으로 우리의 관계를 응집시킬 수는 없었다.

 오랜 시간 너와 함께하면서 나는 차츰 내 마음을 오해해 왔다. 단순히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는 널 좋아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그건 친구 이상의 마음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그런데 자신이 없었다. 내 영혼을 다 빼내 보일 만큼 열렬히 널 사랑할 자신이.

 삶은 사랑만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세상은 사랑에 굶주려도 어떻게든 살아졌다. 고철덩어리 같은 마음이라도, 공허하고 텅 빈 하루를 꾸역꾸역 살아낼 수 있는 것이었다. 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을 때 느껴지는 냉기와 요리를 해본 지 오래된 깨끗한 부엌과 차가운 이불속에서 살아가는 게 익숙해진 삶이었다. 그곳에 너 하나 들어온 들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애써 그런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 나았다. 책임에 대한 회피라고 해도 좋았다. 난 아직 그 대단한 사랑을 지켜낼 용기가 나지 않았으므로.

 집에 들어오자마자 보일러부터 틀었다. 집안이 이상하게 춥다 했더니, 베란다 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소금 같은 눈이 베란다 앞 시든 화분 위에 쌓여 있었다. 눈이 흘러든 모양이었다. 발끝에 화분의 냉기가 타고 올랐다. 베란다 문을 닫으며, 나는 한참 얼어붙은 화분을 내려다보았다. 생명의 호흡하나 느껴지지 않는, 차갑게 언 화분을.

 단지 사랑을 받고 싶었다. 그런 욕심을 잠깐 부려보았다. 너의 손을 잡아보고 싶었던 것과 따뜻한 품에 안겨보고 싶었던 것과 차가운 뺨을 어루만져주고 싶었던 것들. 소소하지만 어쩌면 그 무엇보다 뜨겁고 가슴 설렐 것 같은 행위들을. 머릿속에 필름을 펼쳐놓고, 조각조각 잘라 내려다보는 것을. 마치 차갑게 얼어붙은 화분을 내려다보듯, 나의 기분이 그랬다. 시린 발을 이불속에 밀어 넣으며, 찬 손을 겨드랑이 사이에 품으며, 그런 장면들은 그저 욕심이었다고 되뇌었다. 괜찮다고 되뇌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천천히 본래의 온도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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