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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an 02. 2022

내가 널 사랑하지 않았나 보다

 넌 가끔 우리의 관계를 무기 삼아 협박하곤 했다. 아주 사소한 오해나 실수에도 쉽게 이별을 이야기했다. 애걸하는 쪽은 늘 나였다. 내가 널 무척 많이 사랑했으니까. 너와의 이별은 죽기보다도 싫었으니까. 너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나는 착잡한 마음으로 끊었던 담배를 물었다.


 어쩌면 널 바라보는 마음이 사랑이 아니라, 사랑을 닮은 연민이었던 걸까. 단순히 네가 안타까워 떨렸던 마음을 설렘으로 착각한 탓이었을까. 너는 하루에도 수없이 죽고 싶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비관적인 삶 속에서도 바지런히 다음 생을 이야기했다. 다음 생에 태어나면 바람이 되겠다고. 자유롭지 못하고 환경에 메여 사는 자신이 마치 나무 같다고 했다. 나무 같은 삶이 싫다고 했다.

 누구의 인생도 자유롭지 않았다. 나 또한 정직한 직장인의 삶을 살았으니까. 아홉 시에 출근해 여섯 시에 퇴근해서야 비로소 나의 시간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널 알게 된 이후로, 퇴근 후 나의 일상은 오롯이 너의 것이 되었다. 너는 언제나 나의 시간까지도 묶어두어야만 직성에 풀리던 사람이었다.

 주말 저녁은 같이 먹을 것, 한 달에 한 번은 영화를 볼 것, 아침이면 눈을 마주치며 사랑한다고 할 것, 잠들기 전까지 머리를 쓰다듬어줄 것, 그리고 담배는 끊을 것. 너의 요구에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던 건, 네가 얼마나 나의 사랑을 갈망하는 지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그런 너의 집착도 귀엽게 넘어갈 수 있었다. 정말, 너를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랑이라고 느꼈던 너의 집착은 어느 순간 바래졌다. 내가 너의 요구에 지쳐 갈 때마다 너는 내 마음을 테스트하고 싶어 했다. 자신에게 지쳐버린 것은 아닌지, 지쳤다면 얼마나 지쳤는지, 우리 사랑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을지 알고 싶어 했다. 너의 테스트가 눈앞에 선명히 보이기 시작할 때 즈음, 나는 점점 더 너를 멀리하게 되었다. 사랑하면서도 미워하게 되는, 일종의 애증 같은 것이 진득하게 따라붙었다.

 ─ 이제 날 사랑하지 않아?

 너의 물음에 선뜻, 아니,라고 대답할 수도 없었다.

 너는 가끔 나에게 "네 마음이 변해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처음에는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우리의 법칙은 늘 변함이 없었으니까.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마음이 변한 만큼 너도 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너의 귀여웠던 집착은 점점 광기로 변했다. 널 향한 나의 마음을 사랑했다가, 의심했다가, 때론 증오하기도 했다. 너의 증오가 담긴 사랑은 때로 모질고 날카로운 말로 내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야? 내가 미운 거지, 그렇지? 언제나 변함없이 널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어떤 날은 너의 질문에 나도 내 감정을 확신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 어쩌면 내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단순히 연민이었던 것이라고.

 마음은 다시 돌고 돌아와, 너를 처음 만났던 순간까지 왔다. 그때 나는 널 바라볼 때 무슨 심정이었을까. 죽고 싶다고 눈물을 쏟던, 겨울의 차가운 바람 앞에 머리칼을 쓸어 올리던 네 모습을 나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그때 널 지켜주고 싶다는 마음은, 그저 연민이 아니었을까. 왜 저토록 힘들어하는 걸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불쌍하다'. 그러나 '불쌍'과 '연민'으로 표현하기에는 조금 모자라다. 그것보다 훨씬 더 벅차고, 더 가슴 아프며, 더 애절하고, 그래서 안아주고 싶던 마음까지 포괄하기에는 정말 작은 단어였다.

 ─ 대체 왜 그러는 거야. 널 사랑해. 널 사랑한다니까….

 네가 습관처럼, 어쩌면 협박처럼 내뱉던 이별을 받아들이게 된 것은, 이제 더 이상 네 얼굴에 사랑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거짓말. 날 사랑하지 않으면서.

 그 끝없는 불신과 증오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것은 오직, 내가 널 사랑하지 않는 일이었다.

 ─ 그래. 그랬나 보다. 널 사랑하지 않았나 보다, 내가.

 그렇게 인정해버리는 걸로, 이로써 너의 협박 같은 이별 통보를 받는 일도 마지막이 되었다.


 붉게 타들어가는 담배 끝을 바라보며, 긴 연기를 내뱉었다. 오랜만에 피운 담배에 머리가 잠시 아찔해지고, 아득해졌다. 담배 없인 하루도 못살았는데, 너와 함께일 때는 어떻게든 살아졌다. 네가 모든 걸 잊게 했는데, 널 보면 행복했는데, 네 미소가 예뻤는데. 그냥, 네가 보고 싶다. 다시 담배를 입으로 가져오다 천천히 내려놓았다. 머리가 어지러운 것은 단순히 오랜만에 피운 담배 때문이라고. 너를 여전히 좋아한다거나, 네가 밉다거나 아니, 네가 보고 싶은 이유 때문은 아닐 거라고. 조각조각 속으로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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