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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an 27. 2022

흩어져버릴 이별을 마주하는 일

 그날의 야경이 보고 싶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던 밤의 향연. 고요한 침묵이 서린, 짙은 밤에 우린 뜨거운 입김을 마주한 채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네 손끝이 내 손끝에 닿을 때마다 느껴지던 그 찌릿한 감정은, 생경한 도심의 불빛을 가시처럼 돋게 만들었다. 눈물이 차올라 눈앞을 부옇게 만들면서도, 심장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마구 뛰었다. 한 번만 안아보자. 네가 몸을 틀어 내 몸을 뜨겁게 안아주던 순간, 나는 두근거리는 설렘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어여쁜 네 두 눈은 산등성이에 우두커니 선 등대처럼 얕으면서도 짙게 반짝였다. 그때 나는 어둠이 두렵지 않았다. 네 따뜻한 두 손을 잡고 네 두 눈빛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긴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것만 같았다. 언덕을 내려와 침묵이 쌓인 골목길을 걸으며, 풀린 다리에 비틀거릴 때 서로의 팔을 잡아주며, 틈틈이 서로의 눈을 바라봐주던 시간. 긴 밤이 흐르고 흘러도, 아침만은 오지 않기를 바랐다. 우리의 소망이 점점 더 간절해지는 시작점에 우리는 서 있었다.

 모든 순간이 아름다웠다. 시커멓게 출렁거리는 바다 위로, 달이 그린 그림자는 노을 진 바다의 윤슬처럼 찬란했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다 결국 이별로 귀결되고 말던 대화는, 그 말미에도 좋다는 감정 하나로 눈물짓곤 했다.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해, 나는 널 잊고 싶지 않은데, 난 아직도 네가 좋은데, 우리가 왜, 대체 왜. 끊어지지 않는 문장의 고리들을 가슴에 담아두며 혼자만의 긴 끝말잇기를 밤새 하면서도, 우리는 서로에게 제대로 마음을 전달하지 못했다. 그 고백이 서로를 더 힘들게 할까 봐 두려웠던 걸까.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눈에 담긴 등대를 알아보았다. 우리는 여전히 해바라기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이 없으면 살아갈  없다는 , 햇살에 담긴 자양분을 있는 그대로 빨아들이려는 , 혹은 암초에 부딪히지 말라며 바닷길을 비추려는 , 우리는 처절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눈빛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신을 붙잡지 않아도, 우리가 서로 안아주지 않아도.  애잔한 파도 위에 우리의 마음을 유리병에 담아, 동동 띄워 보냈다. 그리고는 믿기지 않을 거짓을 내뱉었다. 이제  사랑하지 않는다고, 네가 보고 싶지 않다고,  잊어  거라고. 이제 서로의 눈이 보이지 않으니, 뜨겁던 진심도 서서히 쓰러져 갔다. 이젠 정말 네가  사랑하지 않을  같다고.


 그날따라 유난히 야경이 보고 싶었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 지상의 별빛은 바다 표면을 반짝였다. 달그림자와 도심의 불빛을 잘 담아낸 검은 바다 도화지. 먹먹해진 감정으로 한참 그 바다를 바라보았다. 너도 어딘가에서 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을까. 아니, 어쩌면 이미 나를 덮고, 바다의 풍경 따위 잊어버렸을까. 나만 널 그리워하고 있는 걸까. 네 집 앞을 지나치는 버스에서, 그저 네 집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그리움이 사그라들던. 아주 가까이, 네 곁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되던.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널 빨리 잊을 수 있겠다고 착각하게 되던. 이 긴 다리를 건너며 그 오만한 착각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아니, 나의 그리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네가 그리웠다. 여전히 네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야경이 보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야경이 아니라, 네가,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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