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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r 10. 2022

don't hold back on me

내 앞에서 망설이지 않아도 돼

 나는 내 두 눈빛이 흔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부끄럼 없이 네 눈을 바라보았어. 그게 내 혼란스러운 감정을 다 꺼내 보이는 일인 줄도 모르고. 너는 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살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러기에 나는 아직 관계라는 넓은 우주를 제대로 헤엄쳐보지도 못했어. 착한 아이처럼 어른들이 그러쥐어준, 세상에 통용되는 모범답안만 물끄러미 바라보았지. 널 사랑하는 일을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어. 떳떳하지도 못했고, 당당할 수도 없었으니까. 행성의 뒤편에 가려져 제 몸집을 숨긴 채 살아가는 사랑 같았어. 널 사랑하는 일은 그런 거였어.

 귓가에 아스라이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아련하게 떠오른 얕은 별빛이, 나의 부끄러운 마음을 모른 체 해주겠다는 듯 천천히 스러졌어. 얼굴이 붉어진 건, 조금 쌀쌀해진 바람결 때문이었지. 네가 조금씩 내 손끝을 닿을 듯 말 듯 스쳐갈 때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랐어. 모든 세상의 눈을 가리고, 조각난 별빛마저 눈을 감아주는 새벽에, 나도 모르는 척 네 입술을 훔치고 싶었어. 어차피 아무도 모를 테니까. 아침이 밝으면, 우리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머쓱한 기분을 감출 테니까.

 ─ 이제 다시는 널 볼 수 없을 것 같아.

 세상의 답안대로 나는 결국 너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했어. 우리는 잠시 침묵을 지켰지. 그 잠깐이 나에게는 일 년이 흐른 것처럼 길게 느껴졌어. 이제 그만 보자고, 너도 힘들게 될 거라고. 실은 그 말은 핑계였어. 이제 나는 더 이상 나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거든.

 긴 세월 누군가를 바지런히 만나 오면서, 후회 없는 사랑도 하고 가슴 찢어지게 이별도 했어. 그리고 모든 만남에는 지긋지긋한 이별이 따른다는 걸 알게 되었지. 이별은 참 무뎌지려야 무뎌질 수 없겠더라. 이제 더는 상처받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기도 전에 이별을 먼저 생각했어. 이렇게 얕게 시작하는 설렘도 점차 거칠고 뜨거워지면, 나는 또 한참 널 잊지 못한 채로 가슴 아파하겠지. 이런 끝이 보일 사랑이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애초에 내가 널 미워하지 않아야 한다고. 널 만나기도 전에 멀어지는 연습을 했어.

 언젠가 내가 결혼을 한다면, 나는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었어. 그럼 내 모든 걸 다 드러내 보여야 하니까. 내 사소하고 볼품없는 습관과 버릇들, 감당하기 힘든 감정 기복과 어중간한 태도들. 그런데 나는 결국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의 결점을 다 드러내 보일 지언정, 그 사람과 같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더라. 그 알 수 없는 감정을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하더라. 사랑. 내 모든 걸 꺼내보여도 그저 좋을 수밖에 없다는, 그 이상하고 엉성한 마음과 감정을 말이야. 예전엔 사랑을 거창하고 대단한 것으로 보았는데, 지금은 그저 도망치고 싶어. 나의 결점들을 보고 네가 실망하게 될까 봐, 날 미워하게 될까 봐, 그렇게 우리가 이별하게 될까 봐. 그래서 결국 내가 상처받게 될까 봐.

 ─ 내 앞에서 망설이지 않아도 돼.

 긴 침묵을 깨고 비로소 네가 말을 하게 되었을 때, 도망치려던 내 마음이 잠시 주춤거렸어. 글쎄, 난 널 사랑하고 싶은 걸까, 내가 상처받고 싶지 않은 걸까. 잠시 그런, 지금 당장에 결론도 내릴 수 없는 질문을 떠올려보고는, 애써 고개를 저었어.

 이제 나는 그런 거짓말 믿지 않기로 했거든.

 망설이지 말라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사랑하라는, 상처 주지 않겠다는,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들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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