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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r 13. 2022

그때의 우리는

 우리에게는 아름다운 꿈이 있었다. 어쩌면 남들이 보기에는 거창하고, 뻔하고, 대단해 보이는 것들이었다.

 ─ 네가 그걸 이룰 수 있어?

 누군가들은 동그란 눈을 꿈뻑이며 우리를 빤히 쳐다보기도 했다.  날 걱정들은, 진심보다는 가십에 가까워 더욱더 우리의 꿈을 감추게 만들었다. 분명 꿈은 자꾸만 말해야 이루어지는 것이랬는데.  말은 마치 현실에서 실현 가능한 수치가 높은 사람에게나 속하는  같았다.

 꿈을 반드시 이루겠다고 말한 적 없었다. 단지, 아주 먼 훗날의 내 모습이 그런 멋진 모습이면 어떨까, 생각해본 것일 뿐이었다. 꿈을 찾아 아등바등해봤자, 실현할 수 없다는 것도 너무나 뻔히 잘 알고 있었다. 내 인생에 누구보다도 진심이었으니까. 내 인생이었기에 망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너무도 당연하게 우리의 삶에 침범하려 들었다. 끝까지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서, 가타부타 실언들만 늘어놓았다. 조언이라는 참견이 숨을 조여왔다. 결국에는 기어코, 그 꿈을 무너뜨리고, 또 부수고야 말았다.

 어쩌면 우리는 그런 세상의 편협한 시각과 불편한 참견 때문에 더욱 가까워졌는지도 모른다. 높다란 꿈이라는 벽을 허물고 싶지만, 쉽사리 이룰 수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는 잠시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며 이룰 수 없는 꿈을 이야기했다.

 ─ 나중에 말야. 아주 먼 십 년, 이십 년이 지났을 때 말야. 그때의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어쩌면 연주자가 되고 싶기도, 가수가 되고 싶기도, 문학가가 되고 싶기도, 예술가가 되고 싶기도, 화가가 되고 싶기도 했던 우리는, 현실의 벽 앞에 굴복하면서도 끝까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몇 시간, 며칠, 몇 달, 몇 년 동안. 그 꿈은 시들해지기도 했다가, 포기하기도 했다가, 다시 아련해지기도 했던. 마치 내 인생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첫사랑을 상기하는 일과도 같았다. 그렇게 천천히 그날의 뜨거웠던 날들을 떠올리며, 어쩌면 그때야말로 우리가 우리의 인생을 가장 뜨겁게 사랑했던 때가 아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어떻게든 무너지지 않으려고, 부서지지 않으려고, 사라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살아가던 날들이었다.

 그때는 전우애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우리는 누구보다도 처절하게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서로의 힘을 믿고 있었다. 지금은 다 식어버린 그때의 뜨거운 마음이 아련해서, 어쩌면 그때의 우리는 서로를 처절하게 사랑하고 있던 건 아닐까 착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그때의 우리 마음을 사랑이었노라고 포장하고 싶지 않다. 단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때문에, 극단의 감정을 묘사할만한 것, 떠올릴만한 것이 그저 사랑이라는 감정이기 때문에, 우리가 사랑을 몰랐기 때문에, 그 마음을 사랑이라고 하고 싶지 않다. 사랑은 어쩐지, 끝이 보이는 찰나의 순간 같으니까. 언젠가 소진해서 없어져버릴 듯한, 불씨 같은 사랑은 아니었다고. 그보다는 조금 더 어리숙하고 애절한, 젊은 날의 뜨거운 아픔이 상존하고 있었다.

 현실이 너무 무거워 손에 쥐고 있던 꿈을 천천히 놓는 와중에도, 우리는 꿈이라는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서로를 응원할 수 있을 테다. 사랑보다 더 깊은, 어쩌면 연민과 공감과 동병상련과도 같은,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에 끝없이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건 아닐까. 일말의 시샘도, 욕심도 없이, 아주 순수하고 깨끗한 응원과 위로로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마음. 그 옛날의 우리에게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세상의 때가 묻어 닦이지 않는 지금의 마음과는 다른. 그 시절의 마음은, 되돌아갈 수 없는 아득한 마음일 뿐이라고.

 그러니 옛날의 순수한 마음과 응원을 현재까지 끌고 오지 않았으면 한다. 그때의 우리, 순수하고 깨끗하며 아무것도 몰라 울기만 했던, 그 시절의 우리를 그대로 지켜주었으면 한다. 조금 더 자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과 때가 묻은 마음으로 그 옛날의 순진했던 우리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지 말자.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지금이니까. 그러니 끝까지 꿈을 움켜쥐고 있을 필요도, 현실에 굴복해버렸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과거의 우리가 처절하게 우리의 인생을 사랑했듯, 우리가 우리를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했듯, 서로 눈물을 닦아주며 진심으로 위로를 건넸듯, 현재의 우리 인생도 공감 속에 어우러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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