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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r 14. 2022

부치치 못한 러브레터

 내가 널 부지런히 사랑하는 동안, 넌 나의 궤도에서 더 멀리 떠밀려 나갔다. 궤도 밖으로 밀려 보내는, 보이지 않는 그 은근한 파동을 나는 알리 없었다. 네가 나에게서 점점 멀어질 때마다, 내 마음은 더욱더 조급해졌다. 사랑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너에게 향하는 마음만큼은 사랑이라고 믿었다. 널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은 한 여름 몸살처럼 한기가 들었다가도 뜨거워지기도 했으니까. 개도 안 걸린다는, 한 여름의 감기가 마음에 걸린 순간, 나도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내가 널 사랑한다니, 이렇게 허무하게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니. 하루에도 몇 번씩, 네 생각에 머리를 젓곤 했다. 네 생각은 떠올릴 때마다 늘 새로웠다. 단 한 번도 네 생각이 지겨운 적 없었다.

 너는 내게서 차츰 멀어져 갔지만, 오히려 내 눈앞에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리고는 몇 번이나 내 가슴을 찢어 놓는 말을 했다. 그 감정은 그저 나의 착각일 뿐이라고 했다. 단지 순수한 마음으로 날 응원하고 싶었다고. 난 아닌데, 네가 나에게 뜨거운 응원을 보내는 동안, 난 그 모든 시그널을 사랑으로 읽었는데. 사랑으로 엮인, 진심 어린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지친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던 위로가 사랑이 아니었다니, 그 모든 게 단순히 나의 착각이었다니, 이토록 허망할 수가 없었다.

 넌 단지 내가 어리기 때문에 사랑을 몰랐던 거라고 얼버무렸다. 그 밤, 잇새로 새어 나오는 고백은 너의 붉어진 얼굴 앞에 주저했다. 내가 널 사랑하게 되리라곤 전혀 예상하지도 못했다는 듯이. 그리고는 황급히 등을 돌려 가던 길을 갔다. 마치, 절대로 그 고백을 입 밖으로 뱉어내지 말라는 듯이.

 너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것 자체도 내 이기심인 걸까. 아니, 어쩌면 너의 이기심이 아닐까. 넌 우리가 계속 친구로 남아있길 바랐지만, 난 이제 네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이미 내가 사랑에 빠져버린 순간, 지난날의 우정은 진즉에 어긋나 버린 것이다. 마치 그라데이션처럼 수평선으로 내려갈수록 붉어지는 노을처럼, 서서히 걷히는 안개처럼, 먹구름 사이로 튀어나온 햇살처럼. 이제 더는 감출 수도, 지울 수도 없는 관계가 되었다. 내가 널 사랑해버린 모든 순간에.

 넌 내게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네 야속한 눈빛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왜 하필 사랑에 빠져버려선….'

 널 좋아하는 마음은 나도 어떻게 할 수 없던 건데. 그걸 꼭 내 탓이라고 비추는 것 같은 네 눈빛이 미웠다. 그리고 또 한 편으로는 그런 널 온전히 미워할 수도 없었다. 그런 모습마저도 좋았다. 네가 날 원망하고, 미워하고, 싫어하는 그 모습마저도 넌 그저 사랑스러운 존재였다.

 친구로 남아있길 바라는 건 너의 이기심이었다. 난 죽어도 네 곁에 친구로 남아있을 수 없었다. 내가 자꾸만 널 욕심냈다. 너와 함께 있으면 심장이 터질 것 같고, 손을 잡고 싶고, 입술을 훔치고 싶고, 뜨겁게 껴안고만 싶었다. 파동에 떠밀려간 너를, 내 행성의 중력으로 있는 힘껏 끌어오고만 싶었다. 가지 마라고, 가긴 어딜 가느냐고. 하지만, 이런 내 욕심을 네가 순순히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그런 관계 속에서는 어느 누구도 행복할 수 없었다. 널 가질 수 없는 나와 그런 내게서 벗어나려는 너의 발버둥만이 공허한 우주를 부유하고 다닐 테니까. 그래서 난 네 곁에 친구로도 남을 수 없는 것이었다. 네가 가진 모든 것들을 욕심낼까 봐. 날 바라보며 순수하게 웃을 널, 언젠간 부서뜨리게 될 테니까.

 네가 완전히 내 곁을 떠난 날, 이 부치지 못할 편지는 나의 궤도를 천천히 돌 것이다. 우주 밖으로 나가지도 않고, 내 품에 안기지도 않고. 어느 날 가끔씩 책상 위에 꺼내 놓고 읽으면서, 그렇게 잊힐 듯 잊히지 않게 내 곁을 떠다닐 테지. 그래도 괜찮다. 널 있는 힘껏 사랑할 수 없다면, 차라리 덮어둔 채로, 지난날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는 편이 나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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