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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r 15. 2022

나한테 넘어올 거 아니면

 순탄치만은 않았지.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길이 없는 감정을, 어떻게든 네 앞에 표현해야 한다는 게. 오래전부터 길을 잃어버린 난파선처럼, 옆구리 한쪽이 구멍 난 채 널 바라보기만 했어. 난 단지 널 사랑해야 했을 뿐이야.

 난 아직도 온전히 널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넌 있는 그대로 널 바라봐주길 바랐지만, 이미 나에게 너는 매우 벅찬 존재였어. 널 품는 일은, 구멍 난 선박을 메워야 하는 일만큼 막막하고 암담했어. 내가 감히 어떻게 네 앞에 다가갈 수 있을까. 넌 너무나 대단한 존재인데, 나 따위가 뭐라고. 자신을 깎아내리지 마라고 말해도 소용없었어. 그저 나에게 너란 존재는, 그만큼 크고 대단하다는 말이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너는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했어. 생각보다 너 자신이 그토록 멋진 사람은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말이야. 남들 시선 따위 중요하지 않아.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널 얼마나 존경하고 어여뻐하는지만 알면 된 거야.

 네 앞에서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게 우습게 들릴지도 몰라. 그렇지만 우정이라는 말로 얼버무리기엔, 너와 나의 경계가 필요 이상으로 좁혀져 버린 건 사실이야. 부정하려고 하지 마. 어중간한 태도로 일관했던 너도, 나에게 조금은 흔들렸던 거잖아. 아니야, 그래. 내 마음이 그렇다는 말이야.

 네가 날 이성으로 보지 않는대도, 그게 설령 사랑이 아니라 착각이라고 말할지라도, 난 다 좋아. 다만, 나에게 네 연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 난 네가 어떤 미운 짓을 해도 다 용서할 수 있는데, 가끔은 네 옆에 끈질기게 붙어있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점점 더 작아져 가. 네 옆에 나는 뭘까, 단지 친구인 걸까. 그런 생각들은 언젠가 잊고 있던 우리 사이의 벽을 더 극명하게 나누어 놓았어. 괴로울 정도로 네가 원망스럽고, 가슴이 시리도록 그 사람에게 질투가 났어.

 그러지 마라고, 그런 마음 갖지 말라고 말하지 마. 내가 널 사랑하는 건, 오직 나만이 영유할 수 있는 권리야. 내 자유까지 너에게 귀속되고 싶지 않아. 온종일 영혼과 마음이 너에게 끌려가고 있는데 널 좋아하는 마음마저 차단당하면, 내 인생이 너무 서글프잖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나의 진심을 가지고, 쥐고 흔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애매한 태도로 내게 적선하듯 하지 . 네가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곁에 연인으로 남아있길 바랐던 마음은 맞지만, 네게 사랑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어. 그건 사랑도 우정도 아니야. 아주 비루한 동정일 뿐이지.

 나에게 그런 마음을 비출 거면, 확실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친구라는 애매한 말로 날 메어두려고 하지 마. 난 이제 너와 친구 하기 싫으니까. 나에게 사랑 이상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넌 그저 네 연인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면 돼. 나 홀로 외롭게 널 사랑하더라도 그러는 편이 훨씬 낫겠어. 애매하게 내 마음을 재고 흔들지 마. 나한테 넘어올 거 아니면.

 난 스치듯 뱉은 네 말 하나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행복과 불행을 오고 가. 훗날 부풀려진 동정으로 내게 해일 같은 불행을 안겨주려는 게 너의 목적이라면, 반쯤은 성공했어. 하지만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이제 애매한 감정은 그만둬. 이러다 내가 널 친구로서 좋아했던 마음마저 떠내려가 버릴까 두려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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