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탄치만은 않았지. 세상의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길이 없는 감정을, 어떻게든 네 앞에 표현해야 한다는 게. 오래전부터 길을 잃어버린 난파선처럼, 옆구리 한쪽이 구멍 난 채 널 바라보기만 했어. 난 단지 널 사랑해야 했을 뿐이야.
난 아직도 온전히 널 사랑하는 방법을 몰라. 넌 있는 그대로 널 바라봐주길 바랐지만, 이미 나에게 너는 매우 벅찬 존재였어. 널 품는 일은, 구멍 난 선박을 메워야 하는 일만큼 막막하고 암담했어. 내가 감히 어떻게 네 앞에 다가갈 수 있을까. 넌 너무나 대단한 존재인데, 나 따위가 뭐라고. 자신을 깎아내리지 마라고 말해도 소용없었어. 그저 나에게 너란 존재는, 그만큼 크고 대단하다는 말이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너는 내가 바라보는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했어. 생각보다 너 자신이 그토록 멋진 사람은 아니라고 대답하면서 말이야. 남들 시선 따위 중요하지 않아.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고 사랑하는지, 널 얼마나 존경하고 어여뻐하는지만 알면 된 거야.
네 앞에서 사랑에 대해 말하는 게 우습게 들릴지도 몰라. 그렇지만 우정이라는 말로 얼버무리기엔, 너와 나의 경계가 필요 이상으로 좁혀져 버린 건 사실이야. 부정하려고 하지 마. 어중간한 태도로 일관했던 너도, 나에게 조금은 흔들렸던 거잖아. 아니야, 그래. 내 마음이 그렇다는 말이야.
네가 날 이성으로 보지 않는대도, 그게 설령 사랑이 아니라 착각이라고 말할지라도, 난 다 좋아. 다만, 나에게 네 연인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게 좋겠어. 난 네가 어떤 미운 짓을 해도 다 용서할 수 있는데, 가끔은 네 옆에 끈질기게 붙어있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점점 더 작아져 가. 네 옆에 나는 뭘까, 단지 친구인 걸까. 그런 생각들은 언젠가 잊고 있던 우리 사이의 벽을 더 극명하게 나누어 놓았어. 괴로울 정도로 네가 원망스럽고, 가슴이 시리도록 그 사람에게 질투가 났어.
그러지 마라고, 그런 마음 갖지 말라고 말하지 마. 내가 널 사랑하는 건, 오직 나만이 영유할 수 있는 권리야. 내 자유까지 너에게 귀속되고 싶지 않아. 온종일 영혼과 마음이 너에게 끌려가고 있는데 널 좋아하는 마음마저 차단당하면, 내 인생이 너무 서글프잖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나의 진심을 가지고, 쥐고 흔들지 않았으면 좋겠어. 애매한 태도로 내게 적선하듯 하지 마. 네가 날 진심으로 사랑해주고, 네 곁에 연인으로 남아있길 바랐던 마음은 맞지만, 네게 사랑을 구걸하고 싶지 않았어. 그건 사랑도 우정도 아니야. 아주 비루한 동정일 뿐이지.
나에게 그런 마음을 비출 거면, 확실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 친구라는 애매한 말로 날 메어두려고 하지 마. 난 이제 너와 친구 하기 싫으니까. 나에게 사랑 이상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넌 그저 네 연인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을 주면 돼. 나 홀로 외롭게 널 사랑하더라도 그러는 편이 훨씬 낫겠어. 애매하게 내 마음을 재고 흔들지 마. 나한테 넘어올 거 아니면.
난 스치듯 뱉은 네 말 하나에, 하루에도 수십 번씩 행복과 불행을 오고 가. 훗날 부풀려진 동정으로 내게 해일 같은 불행을 안겨주려는 게 너의 목적이라면, 반쯤은 성공했어. 하지만 내가 행복하길 바란다면, 이제 애매한 감정은 그만둬. 이러다 내가 널 친구로서 좋아했던 마음마저 떠내려가 버릴까 두려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