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영 May 20. 2022

재미없는 사람

 당신과 나 사이에 끊어진 불꽃은, 스파크 같은 것이었다. 아주 밝고 찬란하게 타오르던 불빛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숙연해졌다. 그 고요하고 적막한 기류 사이에는 그래도 아직 은근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부싯돌만 있었다면 언제고 다시 불꽃을 튀어 올릴 수 있는, 어쩌면 아주 중요한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당신은 다시금 스파크를 일으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래,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당신이 애를 쓰는 마음과는 달리 도무지 불꽃이 튀지 않았던 이유는, 이제 더는 내가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 건조한 마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난 아주 축축하고 습했다. 물기를 머금은 스펀지처럼, 당신의 애씀에 울컥울컥 눈물만 뱉어냈다. 그것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혹은 당신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이런 내 마음을 당신을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하는, 애잔하고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당신을 향한 불꽃은 사그라들어 버렸다. 딱히 어떤 사건이라고 말하지 않겠다. 내가 천천히 우리의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 마음에는 농도 짙은 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맞다. 당신이 아무리 애써도 불이 붙지 않던 이유. 바로 내가 타오르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당신이 어떤 말을 해도, 어떤 행동을 해도 웃지 않았다. 언젠가 즐거웠던 대화도 점점 시들기 시작했다. 난 차갑게 식은 얼굴로 당신더러 "재미없는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비단 당신에게만 속한 뜻은 아니었다. 당신에게도 나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갔으리라.

 어떤 대화가 재미있는 대화일까. 오락프로그램을 보고 깔깔 거리며 웃어야만 하는 게 아니라면. 그냥, 어떤 날은 당신이 어떤 말을 해도 행복했던 때가 있었다. 당신이 하는 아주 사소하고 소박한 행동 하나에도 웃음이 나고, 당신의 미소에 내 마음이 뜨거워지곤 했던 때가. 그때나 지금이나 당신은 같은 사람인데, 이젠 내가 웃지 않게 되었다. 그렇다. 당신이 변한 게 아니라, 내가 변해버린 것이다.

 당신 앞에서 웃지 않고, 거의 깡통이나 다름없는 무표정으로 앉아있다. 이제 그만 일어날까? 당신이 먼저 말을 꺼냈고, 나는 그래,라고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선한 봄날에 아주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우리 사이, 아주 좁은 간극에서. 당신도 나도, 그 쓸쓸한 기운을 알아차렸지만 누구 하나 먼저 바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주 춥다고도, 그렇다고 괴롭다고도, 슬프다고도, 힘들다고도, 극복해보자고도. 누군가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이 불안정한 관계가 끝이 나게 될까 봐. 불꽃이 일지 않는 관계, 천천히 젖어가는 부싯돌 그리고 침묵. 우리는 침묵 사이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줄 모른 채로, 그냥 재미없는 사람들이 되어 서로의 곁을 지켰다. 이걸 사랑이라고 말할까, 정이라고 말할까, 남이라고 말할까. 그저 그렇게 재미없게 시간을 때우다가, 아주 먹먹한 침묵만 삼켰다. 침묵만 삼켜서는 될 일도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매거진의 이전글 적당히 사랑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