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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y 17. 2022

적당히 사랑하는 법

 신이 있다면, 우리의 운명을 잘못 배합한 게 아닐까 생각한 적 있었다. 신에게 '오만한 실수'라는 말을 붙여가면서까지, 우리의 이별을 부정하고 싶었다. '어떻게 우리가 헤어져', '어떻게 네 마음이 식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그러나 신은 단 한 번도 배합에 실패한 적 없었다. 우리는 사랑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었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기 위한 발판 따위가 아니었다. 타인을 만나기 위한 예행연습도,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세상을 보는 눈만이 한층 더 확장되는 것뿐이었다.

 가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성장은 그저 겉보기에만 좋을 뿐이지, 인생의 내실을 단단히 갖출 수 있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아프기만 한 것, 힘들고 죽을 것만 같은 것. 그저 내 몸과 마음 하나만 건사하면 될 것을, 행복하기만 하면 좋을 것을 왜 구태여 아파야만 하는지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성장만이 좋은 사람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는, 소위 성공한 타인들은 사랑의 성장도 중요하다고 가르쳤다. 왜? 난 이제 더는 죽고 싶지 않은데, 그득 쌓인 무덤가 사이에서 웅크리고 앉아 울고 싶지 않은데, 내 영혼, 내가 최선을 다해 죽어갔던 지난날들을 애도하고 싶지 않은데. 나조차도 '성장'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또 다른 누군가에게 끊임없이 상처를 주어야만 했다.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나라는, 말도 안 되는 답을 결정해주고서. 내가 누군가에게 이별을 통보할 때도, 누군가에게 이별을 통보받을 때도 '성장'이라는 단어를 끌어오지 않고서는 도무지 이 이별을 설명할 수 없었다.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야, 라는 바보 같은 말로 포장하기에만 급급했다.

 웜톤의 나의 세상은 어느덧 잿빛 톤으로 바뀌어서는 개성을 잃어갔다. 사랑은 죽어갔고, 열정은 식어갔고, 그 사이 나의 색채도 잃어갔다. 안정적이고, 평안한 어른의 삶은 죽기보다 싫었는데, 내 여러 날 영혼이 죽어가면서 나는 결국 죽어도 싫던 단단한 어른이 되어 버렸다. 내 인생의 모든 날들이 잿빛처럼 느껴졌다. 삶도, 일도, 사랑도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그 말인 즉, 더는 변죽이 심한, 들끓는 사랑 따위도 없어졌다는 소리다.

 성장의 끝은, 익숙함이 아닐까. 누군갈 열정을 다해 사랑하고, 똑같이 버림받고, 똑같이 버리고, 똑같이 죽고, 그러다 또 다른 누군갈 만나 또 뜨겁게 다시 태어나는 것. 그 지긋지긋한 성장 속에는 결국 '반복'이란 해답만이 수면 위로 얼굴을 비쳤다. 사람 다 똑같다고, 사랑도 지긋지긋하다고, 이젠 혼자 있고 싶다고. 결국 혼자만의 세상으로, 아주 재미없는 잿빛 세상 곁으로 밀어 넣게 되는 것이, 이 성장의 종착지가 아닐까. 그걸 생각해보니, 어쩌면 더 확장되는 시선이라는 건, 그다지 나쁜 일만은 아니라고 알게 되었다.

 타인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만이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해왔다. 운명이라는 건, 반드시 누군가와 인연의 실타래가 엉켜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사랑에는 여러 형태가 존재했다. 그게 꼭 타인일 필요는 없었다. 난 때로 사물을, 혹은 자연을, 시간을, 공간을, 향기를 사랑하곤 했다. 아주 작게 초단위로 쪼갠 공간의 틈에서 향기를 맡은 일이란, 사실 그렇게 촉박하지도 않았다. 그동안 타인을 열렬히 사랑하면서 놓쳤던 것들, 나 자신을 사랑하는 일 혹은 자연을 만끽하는 일 같은 것들을, 나는 한층 더 확장된 시선을 갖고 나서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되니 잿빛이라고 한탄하던 세상은, 생각보다 아주 다채롭고 더 많은 색감을 가지고 있었단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아주 흔해빠지게 외치는 '성장'이라는 말이다. 조금 더 한 차원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게 된다면, 사랑이라는 것은 참으로 종류가 많다는 걸 알게 될 테다. 그럼 그때야 모든 것을 적당히 쪼개어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사랑을 한 사람에게만 몰아넣는 것이 아닌, 내가 사랑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마음을 나눠줄 줄 아는 것. 적당히 사랑하는 방법이란 건, 성장 속에 피어나는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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