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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y 23. 2022

그런 위로

 더 이상 누군갈 만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든 때는, 당신이 미운 때가 아니었다. 오랜 시간 동안 당신을 열렬히 사랑한 탓이었다. 다른 누굴, 이만큼 깊이, 많이 사랑할 수 없었다. 이제 나에겐 사랑을 그득 내어줄 수 있을 만큼의 감정이 없었다. 질량은 점점 줄어들었고, 겨우 숨 붙으며 살아간 것은 얕은 심장소리뿐이었다.

 당신과 헤어지고 돌아서던 날 밤, 나는 눈물을 흘리며 당신에게 편지를 썼다. 한 장, 두 장, 세 장 그리고 네 장. 어떤 말을 하고 싶은 줄도 모른 체 다급하게 써 내려간 편지에는, 진심보다는 막막함이 담겨 있었다. 당신을 붙잡는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는데, 난 단지 지나간 사랑들이 아쉬웠던 것뿐일까. 당신을 위해서는 헤어져주는 게 좋다는 주변 사람의 만류에도, 나는 꼭 당신의 소매를 붙잡았다. 아니, 나는 어쩌면 당신 없이 잘 살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당신과 나의 거리가 점점 더 좁혀 올수록,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줄 몰랐다. 당신과 평생 함께 살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꼭 그렇지만도 않은지를. 모든 감정과 마음에는 '영원'이라는 말은 없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꼈다. 당신이 날 사랑하는 마음조차도 불변하리란 법은 없었을 테니까. 나는 그 변질이 두려워 당신을 떠나려 했다가, 당신은 다르지 않을까란 믿음 때문에 다시 돌아오곤 했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유령처럼 방황하며, 영혼은 자꾸만 우리의 어그러진 관계에 메여 있었다. 당신이 싫은 것은 아니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점점 당신에게 퉁명스러워졌다. 나도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안고 싶고, 당신에게 미움받고 싶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내 마음은 자꾸만 당신에게서 달아날 준비를 했다. 어쩌면 당신이 원하는 '평생 같이 살고 싶다'는 약속을 지켜줄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럴지도 몰랐다. 당신을 평생 행복하게 해 줄 자신도, 언젠가 받게 될 상처에 대한 우려도, 한 번 부서진 사랑을 다시 이어 붙일만한 여력도, 그 무엇도 내게 남아있지 않았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동안, 우리가 이별하는 동안, 뜨거웠던 감정들은 차츰 부서지고 흩날렸다. 당신을 사랑했는데, 당신을 사랑하는 게 어색해지고, 당신을 이해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우리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당신이 나에게 영원한 약속을 물을 때마다, 그 기약 없는 기다림을 끝없이 펼쳐놓을 때마다, 나는 그때마다 조금씩 부서져갔다. 당신을 사랑하는데,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채로. 그러다 당신을 놓치게 될까 두려우면서도, 나는 차마 당신에게 좋아한다는 수줍은 고백조차 하지 못했다. 변해버릴 관계 때문에, 내가 상처 입을까 두려운 마음에, 또는 당신에게 상처를 입힐까 무서웠다. 그러나 이런 위태로운 사랑에도 언젠가 끝이 있다는 걸 알았다. 두렵다. 끝을 아는 사랑을 한다는 건.

 그래도 끝까지 기다릴 수 있다는 당신의 바보 같은 모습 때문에, 나는 또 속절없이 울기만 했다. 그런 위로가 필요한 게 아닌데, 난 단지 당신만큼의 확고한 답을 내 안에 내리고 싶을 뿐인데. 당신은 기다리겠다고 말하면서도 또 한 편으론 나처럼 두려워하고 있었다. 혹여 내가 당신과 영원한 사랑이 아닌, 영원한 이별을 하는 것으로 택해버릴까 봐. 이별, 영원한 남이 되는 것. 그 통탄스러울 헤어짐이 자꾸만 우리 사이를 더욱더 복잡하게 얽혀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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