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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y 25. 2022

우리가 빛이라면

 내 영혼이 빛이라면 어땠을까? 그럼 한가로운 공원에 앉아, 네 어깨에 얼굴을 묻고 한참 울고 싶어. 넌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돼. 그냥 있지, 나는 가끔 너의 넓은 어깨가 떠오르곤 해.

 언제든 힘들 때 말만 하라던 거, 기억 나? 우리가 아주 나쁘게 어그러졌대도, 나는 가끔 네가 이런 날 이해해주지 않을까 생각하곤 해. 찬란한 햇살 아래, 나뭇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의 별빛들을 바라보면서, 그 반짝이는 두 눈으로 내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던 네 모습을 떠올려. 그 모습들은 아주 많은 프레임으로 쪼개져서 내 가슴에 뜨겁게 상영되곤 했지. 널 단 한순간도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었는데, 어쩌다 우리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내가 빛이라면, 나는 너에게로 쏜살같이 달려갈 테야. 네가 더는 날 바라보지 않는대도 말이야. 그러고는 천천히 눈물로 얼룩진 네 뺨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줄 거야. 잠결에 몸을 움츠리게 된다면, 이불을 어깨까지 끌어 덮어주곤, 네 얼굴을 한참 바라볼 거야. 언제 또 널 볼 수 있게 될지 모르니까. 내가 또 언제 널 기억하게 될지 모르니까. 내가 언젠간 널 까맣게 잊어버리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냥 난 가끔, 내가 빛이 되는 모습을 상상하곤 해. 널 한참 동안 바라보는 내 모습을 말이야.

 사랑한다는 말을 수없이 읊어도 꺼지지 않는 마음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언젠가 네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했던 수많은 말들, 그 뜨거운 진심들이 아직도 내 마음에 들끓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네 진심 어린 고백들도 수 천 가지 프레임 속에 빙글빙글 맴돌아. 언젠가 다시 내 가슴에 수많은 화살처럼 쏟아지려고 준비하는 것 같아. 그래, 마치 수많은 손들이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듯이. 내 가슴에 또 한 번 뜨거운 눈물을 울컥 뱉어내게 만들, 날카롭고 아름다운 화살촉들 말야.

 어떤 대낮엔 시간을 되돌려 빛처럼 네게 달려가, 어느 호수공원 벤치에 앉은 널 찾을 거야. 내가 너에게 첫눈에 반했던, 벤치에서 시집을 읽던 네 옆얼굴을 말이야. 조금 무심해 보이는 표정으로 날 올려다보던, 길 잃은 숙녀에게 희고 긴 손가락으로 먼 방향을 가리키던 당신의 모습을 말이야.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 다시 시작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공원에서 네 어깨에 얼굴을 묻고 우는 상상도, 이불을 턱밑까지 끌어 덮어주며 울음을 삼키는 상상도, 네 뜨거운 고백을 가슴 깊이 되새길 일도 만들지 않을 텐데. 이젠 내가 너에게 말해줄 거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내 진심 어린 고백들을 잘게 쪼개어, 네 앞에 선명한 화질로 틀어줄 거야.

 그러니까 날 잊지 마. 좋았던 기억들로만 가득 채워둬. 나에 대한 악몽이 불투명해질 때 즈음, 내가 선명한 빛이 되어 너에게 날아갈 테니까.


(...)


 아니, 아니다. 방금 전에 한 말은 잊어.

 날 잊어줘. 차라리 잊는 편이 좋겠어.

 빛이 되어 날아가는 건, 내 그리움 속에서만 반복할게.

 다시 너에게 상처주고 싶지 않으니까.


 그래, 그러는 편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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