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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May 25. 2022

너에게 쓰는 편지는 파도를 일으키는 항해 같은 것

 한 글자도 채우지 못한 편지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설렘이 있었다. 한자를 채워 넣기 위해서 고심하고, 또 고심한 흔적들이 콕 박힌 잉크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어떤 말을 써야 네가 감동할 수 있을까. 세상에 끌어올 수 있는 언어는 많았지만, 사랑을 표현하기에는 한없이 부족했다.

 용기를 내서 문장을 채워 넣기 시작했을 때는, 파도에 밀려 부지런히 나아가는 작은 통통배가 된 기분이었다. 미끄러지듯 항해하는 그 바닷길에는 별빛처럼 일렁이는 윤슬과 조금 따가운 햇살과 하얀 돛이 있었다. 어느 미지의 섬을 찾으러 가려는 듯 혹은 보물선을 찾으려는 듯, 어떤 욕망과 어떤 설렘과 어떤 뜨거움 같은 것들이 뱃멀미처럼 울렁거렸다.

 그러다 검은 잉크를 따라 이어지는 문장이, 어떤 생각 같은 바위를 만나게 되었을 때 주춤 멈춰 섰다. 그 잠깐의 침묵은, 기나긴 항해에 찾아온 휴식이자 더 좋은 길을 찾으려는 선장의 고심이 한대 어우러졌다. 어떻게 하면 너에게 사랑을 얻을 수 있을까, 미간을 찡그리며 고심하는 시간처럼.

 지난날들에 대한 기억들을 늘어놓거나, 혹은 앞으로의 다짐들을 썼다. 전혀 다른 이야기지만 그 내용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던 건, 널 좋아하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써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난 오직 너의 마음을 얻고 싶었다. 내가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것뿐이었다. 어떻게 하면 더 멋들어진 문장을 쓸지, 내 감정을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네가 감동의 눈물을 흘릴 수 있을지, 나는 그런 것들을 고민하며 너에게 편지를 썼다. 널 많이 좋아하니까. 네가 이 편지를 읽고 웃었으면 하니까. 그게 내 진심이었다.

 편지지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였다. 그 고요한 바다 위에 검은 잉크로 써 내려가는 마음이란, 하얀 파도를 일으키며 널 찾아 떠나는 항해 같았다. 이 편지의 끝엔 무엇이 있을까. 정말 널 찾을 수 있을까, 너에게 닿을 수 있을까, 닿게 된다면 그날의 우리는 어떤 모습이 될까. 우리의 모습은, 내가 지금 그리는 미래와 같은 모습일까. 우리의 사랑이 변치 않는다면, 이 긴 항해의 끝은 어떻게 될까. 그땐 어느 한적한 섬에 터를 잡고 살아가게 될까. 조금 여유를 가지고 네 얼굴을 쓰다듬으며, 가슴 깊이 숨겨왔던 사랑을 고백하게 될까. 그럼 그때 네 얼굴은 어떨까, 네 모습은 어떨까, 네 마음은 어떨까. 편지지 같은 바다를 해쳐가는 동안, 나는 수없이 보이지 않는 네 마음을 확인했다. 너라는 목적지에 제대로 닿기 위해서.

 긴 편지를 마무리하는 마침표를 찍고나서야 나는 슬그머니 펜을 내려놓았다. 몇 장의 긴 편지지를 바른 자세로 한 번 정독했다. 약간의 아쉬움과 크나큰 성취가 밀려들었다.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지를 크게 두 번 접었다. 네가 이 편지를 읽을 때 어떤 마음일까. 부디 내 진심이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입가에 살짝 미소가 담겼다.

 내일 아침에 눈을 뜨면, 두 번 접은 나의 바다를 너에게 전달할 수 있으리라. 이 기나긴 항해일지에서 심해에 잠긴 여러 마음들을 확인할 수 있길 바란다. 아 그냥 겉멋만 든 문장이 아니라, 실은 널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걸. 내가 숨겨놓은 심해의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을 때, 네가 웃으며 나에게 답해줬으면 좋겠다.

 나도 사랑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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