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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n 14. 2022

빛바랜 들녘에 꽃이 필 때 즈음

 

 어떤 이의 감상 속에 내가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이 세상에 한 줄의 이름으로 남는다면, 빛바랜 얼굴로 남는다면, 아련한 손끝으로 남는다면, 어쩌면 그런 아득한 잔상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이 설렐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사랑을 시작하는 이유는, 그 찰나의 설렘을 맛보기 위함일 테다. 뼈아픈 이별 후에는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길 원한다. 하얗게 타들어간 잿더미 속에서도 진득한 불향이 남아있듯이.

 우리의 푸른 들녘에는 언제나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다. 시원한 하늬바람이기도 했다가, 또 어떤 날은 풀밭을 다 헤쳐놓을 정도의 거대한 돌풍이 불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형태의 바람들은 어떠한 걸림도 없이 드넓은 들판을 휘젓고 다녔다. 나비의 날갯짓도 잠자리의 여유도 흩어져 날리는 꽃잎도 영화의 한 장면처럼 담겼다. 마치 그렇게 불어야만 한다는 듯이, 사계의 모습이 모두 봄으로 통일되어 보이게끔 말이다.

 우리는 색채가 진한 봄의 들녘에서 사뿐사뿐 춤을 쳤다. 머리칼이 휘날리는 바람 속에서 서로의 머리를 정돈해줬다. 그리고는 수줍게 얼굴을 붉히기도 하고, 뺨에 입술을 대기도 하고, 뜨거운 눈빛으로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기도 했다. 우리의 겨드랑이 사이를 기분 좋은 바람이 훑고 지나갔고, 서로를 껴안으며 귓가에 마음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걸 시기한 바람이 말을 옮겨다 다른 동네에 소문을 내기도 했다. 모두들 우리를 부러워했다. 우리가 가꾼 봄의 들녘과 꽃과 바람을. 그 풍경과 함께 한 폭의 그림으로 남은 우리의 모습을.

 정성 들여 가꾼 우리의 봄은, 우리가 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순간 시들어가기 시작했다. 빛바랜 어느 낡은 물건처럼 누군가에게는 볼품없는 풍경이 되어갔다. 푸른 들녘은 어느 틈엔가 노랗게 시들어갔고, 붉게 타들어 내려간 노을은 춥고 시린 긴 밤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우리의 계절이 식자 기다렸다는 듯 들녘을 떠났다. 이제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꽃도, 나무도, 나비도, 바람도 없었다. 그 어떤 생명체도 살지 않는, 다 시들어버린 풀밭이 되어 어느 무중력의 우주처럼 되었다. 땅은 점점 차갑게 식었고, 달빛은 하얗게 얼었다. 우리가 우리의 봄을 떠올리지 않게 된 순간부터였다.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사랑에서 떠났지만, 나는 이따금 그때의 당신을 떠올렸다. 그래도 언젠가 따뜻한 시선이 머무는 양지바른 곳이었다. 그곳에서 남부럽지 않을 각자의 사랑을, 한아름 품어다 선물해주었다. 우리의 눈물은 언제나 감격에 겨운, 행복한 울음이었다. 우리 그토록 좋았는데, 왜 갑자기 헤어지게 된 걸까. 우리의 사랑을 시기했던 바람 때문이었을까, 우리를 부러워했던 사람들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우리의 계절에 질려버렸기 때문이었을까.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우리의 훼손된 들녘을 떠올렸다. 차갑게 바스러지는 검은흙을 쥐고서 천천히 일어났다. 시든 풀들이 듬성듬성 나있는 땅에는 이제 우리의 사랑 따위 살아있지 않았다. 조금씩 빛이 바래 시들어버린 풀들만이 서늘한 바람결에 흔들릴 뿐이었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는 언제나 우리의 봄이 살아 있었다. 그곳에 이제 당신의 얼굴은 희미해져 갔다. 당신의 얼굴이 어땠는지, 눈빛은 얼마나 뭉근했는지, 품은 얼마나 따뜻했는지 조차도 아련해졌다. 하지만 무수한 풀 사이로 아주 아름다운 붉은 꽃 하나가 피어오른다면, 그건 아마 당신이지 않을까. 우리가 가꿨던, 내 기억 속에서나 존재하는 우리의 계절에는, 당신이 아니면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가끔 내가 당신을 기억하듯이, 당신의 기억 속에 나도 아주 작은 생명으로 살아있을까? 당신의 빛바랜 들녘에 꽃이 필 때 즈음, 그때 날 다시 찾아주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우리가 다시 이 시든 계절을 회복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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