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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n 15. 2022

후회 없이 널 사랑해야겠다고

 1.

 포물선을 그리며 산등성이 너머로 떨어지던, 어느 혜성의 이름은 ‘눈빛이었다. 눈빛이 그린 하얀 꼬리는 눈앞에 형용하지 않았다. 어느 은근한 싯구처럼 가슴에 날카롭게 파고들어, 따뜻하고 뭉근하게 온기를 퍼뜨릴 뿐이었다. 사랑해. 우리가 밤마다 사랑을 읊을 ,  온기는 더욱더 진해졌다. 네가 고백을 찔러 넣은 가슴을 내려다보니,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밀려 나왔다.  또한 눈에 형용하지 않은 채로, 나는 울음과 함께 밀려드는 감동을 겨우 삼켰다. 그래, 나도 사랑해. 죽기 직전의 유언처럼 아주 힘겹게 뱉었다.


 2.

 상황은 마음먹은 것처럼 되지 않았다. 그간 사랑한다는 진심은 말장난이 되어 허공에 흩어졌다. 넌 언제나 장난꾸러기처럼 내 고백을 회피했다. 나는 밤새 울었다. 깨진 얼음조각처럼 또는 바닥에 난자하게 흩어진 눈물처럼 밤하늘을 수놓았다. 반짝거리는 별빛이 가슴에 부서져 고통이 흘렀다. 그때부터는 각성한 사람처럼 두 눈을 붉혔다. 이제는 네가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가지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후회 없이 널 사랑해야겠다고, 밤새 마음을 다졌다.

 어쩌면 체념이었는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널 두고서, 나는 참담한 마음을 삼켜야만 했다. 꾸역꾸역 삼키고, 속이 뜨거워지는 걸 억눌렀다. 소화제는 먹먹한 마음을 완벽하게 소화시키지도 못했다. 널 보면 쏟아질 것 같은 울음과 막막한 심경을 참으면서도, 나는 최선을 다해 너에게 마음을 표현했다. 아주 작은 손편지부터 자그마한 선물까지. 어떤 날 널 닮은 꽃을 발견하면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같이 오고 싶다고 말했다. 그것만이 나의 마음을 눈앞에 형용해 보일 수 있는, 가장 좋은 고백이었다.

 

 3.

 상황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어떤 날은 그대로 되기도 했다. 나는 출렁거리며 흔들리는 네 눈빛을 보았다. 심해처럼 미동도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네 마음이, 알고 보니 파도였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기다렸다는 듯 널 껴안았다. 너는 작은 아기새처럼 몸을 떨었다가도 이내 천천히 내 등을 감쌌다. 그 따뜻한 온기, 상냥한 손길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자그마한 네 목소리가 귓가로 새어 들어왔다. 사랑해.

 벅차오르는 감정과 주체할 수 없이 뛰는 심장은 너에게 금세 들켜버리고 말았다. 나의 작은 떨림에 네가 손을 잡으며 내 눈을 마주 보았다. 사랑한다고. 천천히 밀려들어오는 네 진심이 그때야 뜨겁게 와닿았다. 나도, 사랑해. 이런 고백이라면 가슴이 터질 것 같대도 언제든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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