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영 Jun 16. 2022

우리 추억 속의 나는, 영원히 널 사랑할 거야

 불멸하는 감정 따위는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는다. 영원할 수 있다는 말만큼 오만한 속단은 없는 것. 그런 게 세상에 존재했다면, 이 세계에 전쟁이란 것도 벌어지지 않았을 테다. 나쁘다고 할 수 있는 감정들, 시기와 질투와 분노의 붉은빛 감정들은 사실 그렇게 나쁘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믿음과 배반 사이에서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영원한 약속이 없듯, 언제든 어그러질 수 있는 것이 서로에 대한 신뢰였다.

 사랑에 대해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우리는 특정한 누군가와 아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관계는 한낱 뻔해 빠진 삼류 드라마에 불과했다. 한때 뜨겁게 사랑했던 어떤 이에 대한 배반, 그리고 특별하다고 믿었던 그때 우리 관계에 대한 배반이 큰 해일로 몰아닥쳤다. 우리는 다를 줄 알았는데, 조금 더 특별할 줄 알았는데, 그때 우리가 '운명'인 줄 알았는데. 우리가 믿었던 운명적 만남이라는 건, 작은 힘에도 무참하게 꺾여버릴 억새처럼, 가녀리고 연약한 환상 같은 것이었다.

 당신이 날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기억이라는 건 늘 쉽게 변질되곤 했으니까. 아름답게 회상될 추억일지라도, 유통기한이 다한 식품에서 비릿하고 쿰쿰한 냄새가 나는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악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한때는 당신의 기억 속에 내가 행복한 꿈으로 각인되어 있길 바랐다. 언제든 다시 꺼내 읽어도 가슴이 뭉근해지는 한 편의 시처럼, 아껴서 소중하게 읽고 싶은 어느 소설의 한 문장처럼. 늘 환상 따위 없다고 말하는 나였지만, 사실 나는 당신에게 우리의 추억이 호접몽처럼 아련했길 바랐다. 나비처럼 흩어진 우리를 그리워하고, 또 언젠간 그런 날이 이어지기를 바라다가도, 꿈에서 깨어나면 이별에 애석해하며 온 몸을 파르르 떨길 바랐다. 당신이 끝까지 날 잊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당신이 그때의 우리를 묻어두길 바란다. 좋았던 순간에 대한 기억들, 사랑이 듬뿍 담긴 미움과 시기와 질투들, 온몸과 온 마음을 꺼내 내 앞에 바치던 정성, 마음 또는 그런 믿음과 신뢰들을. 날 위함도, 당신을 위함도 아니다. 단지 영원하다 믿었던 지난날의 우리,  그 운명적 순간들을 더는 훼손시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변형과 변질 속에서 집착이라는 구더기가 돋아났다. 우리는 다시 생생한 현실로 되돌아올  없는데. 이미  죽어버린 영혼과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과 되돌릴  없는 시간이, 오히려 그런 현실들이 운명처럼 엮여 있었다. 우리가 언젠가 운명처럼 만나 사랑에 빠졌듯, 우리의 이별 또한 운명처럼 받아들여야  일이라고. 미련과 후회 속에 버물려지는, 그대로의 기억과 현실의 간절함으로 뒤섞이는 추억은  이상 아름다운 추억이 아니게  거라고. 어렸기 때문에 서투를  있던 지난날들.  순수한 날것의 시간들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에게 베푸는 마지막 배려이자 사랑일 것이라고.


 "시간이 흐른 지금, 난 널 사랑하지 않아. 하지만 우리의 추억 속의 나는, 영원히 널 사랑할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후회 없이 널 사랑해야겠다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