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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n 19. 2022

당신의 방에 두고 온 마음들

 당신은 눈빛으로, 혹은 따뜻한 말씨로 나를 어루만졌다. 내가 감정에 휘몰아쳐 눈물을 머금고 있을 때, 당신은 바람에 흩날리는 내 머릿결을 정돈해주며 다정하게 말했다. 왜 울어.

 그 다정함 속에 담긴 따뜻한 사랑이 고마워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당신은 어째서 그토록 상냥하냐고, 속으로 애써 당신을 원망하면서. 너무 좋아서,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그 짙은 진심이 담긴 고백을 몇 번이나 되뇌면서, 당신의 두 눈을 보았다. 이별이 보이는 끝을 향해 달려가는 우리의 열차가, 곧 종착역을 알리는 벨을 울렸다.

 우리의 계절은 모든 날들이 찬란했다. 나는 단 하루도 당신을 미워한 적 없었다. 당신을 최선을 다해 사랑했고, 내 마음을 쏟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당신이 나에게 감정을 표현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을 위해 준비하는 모든 마음속에 사랑이 있었으니까.

 내가 당신의 방에 두고 온 게 많아서, 나는 그 마음을 걱정했다. 당신에게 준 마음들, 편지들, 그 흔적들을. 내가 표현했던 마음들이 당신에게는 버려야 할 숙제처럼 느껴질까 봐. 나의 마음을 껴안고 새벽 내 울고 있을까 봐. 설거지를 하다가, 밥을 먹다가, 빨래를 하다가, 침대에 누웠다가.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을 떠올리곤 혼자서 쓰린 가슴을 안고 있을까 봐. 내가 준 짐들, 숙제들, 그 숱한 마음들이 버거워 당신이 힘들까 봐. 당신이 힘들어할 모습을 생각하니, 나도 목구멍으로 밥을 넘길 수 없었다. 몇 번이나 화장실 변기에 코를 박고 게워냈다. 지금 이 상황이 구역질 나올 정도로 비참했다.

 우리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해 상처만 남겼지만, 그래도 지난날 최선을 다해 사랑한 지난날의 우리를 미워하지 않는다. 내가 사랑한 만큼, 당신도 나에게 사랑을 줬으니까. 그저 그런 좋은 기억들만을 떠올리며 당신을 미워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당신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앞으로도 사랑할 테니까.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도 괜찮겠어? 당신이 나에게 순수하게 물은 질문에, 괜찮을 수밖에 없다고 답했던 날 떠올린다. 이제 더는 당신에게 짐을 지우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게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난 그저 바지런히 당신의 선택을 따르게 해야만 했다. 우리가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 못한다면, 내가 당신이 원하는 소망을 들어줄 수 없다면, 아무리 당신을 사랑하더라도 붙잡는 건 내 이기심이니까.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당신이 나로 인해 지쳐가는 모습을 바라만 보는 건, 나에게도 가슴이 찢어지는 일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말라가는 몸과 말 수 없어진 입술, 그리고 저점 야위어가는 얼굴까지. 내가 언제까지 당신에게 상처만 줘야 할까, 언제까지 당신을 기다리게만 만들어야 할까, 언제까지 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 이별이 보이는 유한한 사랑에는 어떤 변명도 없었다. 우리는 마침내 서로에게 솔직한 채로 발가벗겨졌고, 난 오히려 당신을 이해해서 슬펐다. 당신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결국 우리가 헤어지는 수밖에는 없는 걸까.

 우리가 삶의 가치관이 다른 것을, 그 누구의 탓도 할 수가 없었다.

 ─ 우리 그냥 한없이 사랑만 하면 안 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데, 왜 우리가 헤어져야 해.

 그런 철없는 말속에는, 언젠가 직면하게 될 이별을 받아들이고 있음이 보였다.

 우리가 천천히 이별연습을 하기 시작했을 때, 당신 없이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때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만 모두가 상처받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게 어려워 우리는 이별을 택하고 마는 걸까. 우리의 사랑은 어떻게 되는 걸까.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풀리지 않는 질문은 나를 불면의 새벽 속에 가둬놓았다. 두 다리를 웅크린채 무릎을 안았다. 마음 한 구석이 텅 비고 공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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