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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n 20. 2022

지금의 우리가 상처 입는 줄도 모른 채

 우리의 눈앞에 수많은 바람이 지나갔다. 바람 속에 뒤섞인 낙엽들은 갖가지 첨언들을 안고 있었다. 첨언이라고 해야 할지, 참견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바람을 맞으며 이리저리 갈대처럼 흔들린 마음은, 우리가 명확히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함께 하고 싶었던 것, 목표했던 바가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목적 없이 걸어가기 시작했을 때는 아무것도 필요 없었다. 단지 우리의 꼭 맞잡은 손만이 모든 것을 설명해주었다. 불확실한 미래, 지나간 과거 따위 아무 소용도 없었다. 그것들이 우릴 갈라놓을 만큼 큰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다. 햇살에 반짝이는 두 눈빛을 바라보며, 따뜻하게 얼굴을 감싸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큰 사랑이 느껴졌다. 영원한 가치, 영원할 나의 사랑. 그 따스함 속에 우리는 점점 서로에게 애틋해지고 간절해져 갔다.

 떨어지고 싶지 않은 서로의 그 마음들이 우리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미래 없이 흘러가는 관계란, 거대한 물살을 마주했을 때 손쉽게 부서질 것만 같은 연약함이었다. 언젠가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우리 사이를 덮쳐오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천천히 우리의 미래를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게 사랑의 발전이고, 더 오래 함께 있기 위한 계획이고, 서로를 향한 마음이었다.

 ─ 우리 영원히 헤어지지 말자.

 우리가 서로 사랑했기에, 흔한 연애처럼 영원한 이별을 맞닥뜨릴 수 없었기에. 사랑한다면 으레 당연히 치러야 하는 절차처럼 흘러갔다.

 그러나 잔잔한 물 위에 올려놓은 순수한 마음은 그랬다. 여러 방향으로 불어닥친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치이면서 우리가 정확히 무엇을 하고자 했는지를 잊게 만들었다. 그건 결국 서로가 서로를 잃게 만드는 일이었다. 중심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했고, 그 마음은 한없이 바닥을 향해 내려갔다. 이제 더는 바람의 훼방도 없었음에도, 우리는 그 물 안의 고요와 차가움 속에 한 몸이 되어 얼어갔다.

 꼭 맞잡고 있던 우리의 손은 어느샌가 풀어져 있었고, 우리는 서로를 잃어버렸다. 두 눈을 마주하며 바라보던 반짝이는 눈빛들, 따뜻하고 상냥한 목소리들, 모든 걸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만들었던 운명적 순간들이 공허한 마음속을 부유했다. 함께 살아가기 위해 세웠던 방향들이, 오히려 우리를 더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물살 없이 고요한 물속에서 천천히 잠겨 들어갔지만, 사실 우리는 각자 어디로 흘러가야 하는지 알았다. 주변의 바람과 낙엽과 물속에 뒤섞인 불순물들이 각자가 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일러주었는데도,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잃어버린 방향 속에 함께 있었다. 서로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랑한다는 이유 만으로…. 현재의 우리가 상처 입는 줄도 모른 채, 서로의 뜨거운 눈빛만을 기억했다.

 지금의 우리가 상처 입는 줄도 모른 채

 우리가 우리를 사랑한다는 이유 만으로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이유 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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