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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n 23. 2022

잊고 사는 게 아니라, 덮고 사는 거라고

 불쾌한 우울감이 밀려드는 밤이다. 별빛 하나 뜨지 않은 우중충한 밤에 서늘한 초여름 바람을 맞는다. 내일이면 장맛비가 요란스럽게 쏟아질 테다. 봄은 그렇게 얇게 죽어 없어졌다. 언제부터 봄이 있었냐는 듯이, 세상에는 매서운 겨울과 아주 얕은 초여름과 무더운 한여름만이 살아있을 뿐이었다.

 얇게 눌려 죽어갔던 건 봄이란 계절만은 아니었다. 봄날 같던 순간들이 눈앞에 파노라마로 펼쳐졌다. 아주 길고, 긴 시간이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우리의 흑백 필름은, 가위 같은 날카로움에 숭덩 잘려 나갔다. 누가 잘못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우리는 여느 때보다 더욱 처절하게 서로를 갈망하고 애증 했다.

 각자의 시간을 갖는 것이 잘한 선택이었을까. 오히려 시간은 모든 것들을 무뎌지게 만들었다. 당신에 대한 감정이나 기운 같은 것들, 등 뒤를 졸졸 쫓아 다니던 영혼의 그림자, 끝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뭉근한 당신의 눈빛들 까지도. 확신에 들어찼던, 언제나 불변하리라 믿었던 모든 것들은 시간이라는 해풍 앞에 아주 조금씩 깎이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조금씩 불안해지고, 가슴이 저며왔다. 당신이 나를 이런 식으로 잊기 위해 시간을 갖자는 통보를 했었던 것인지. 난 또 당신이 상처받는 것이 싫어, 천천히 쓰러지는 이별을 모른 척 받아들여버린 것인지.

 그때 나는 소나기 같은 눈물을 턱밑으로 쏟아내며 당신의 두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의 두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흔들림, 주저함, 어쩔 줄 몰라하는 그 표정들이 오히려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당신은 아직도 날 사랑하고 있다는 걸, 그렇기에 정말 각자에게 '시간'이 필요한 걸 지도 모른다는 확신. 내가 당신의 방식을 수락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시간'은 오히려 명확한 것을 불투명하게 만들었다. 진심이라고 믿었던 당신의 마음을 더욱 모호하게 만들었다. 당신을 의심했고, 당신을 미워했고, 당신을 원망했으며 그런 와중에도 당신을 좋아했다. 나에게 이별이나 다름없는, 우리 관계에 대한 사형선고를 내리던 날 내 마음은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그래도 당신의 눈빛을 잊을 수 없었던 건, 오히려 그 얼굴을 잊지 않아야만 당신을 지우지 않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고 있듯, 당신도 나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라고. 나 혼자만 속 끓는 사랑 같은 것이 아니라고. 그런 사랑이라면 이제 신물이 났으므로. 이제는 사랑에 대해 배반당하고 싶지 않았으므로.

 어느 날 당신이 불쑥, 다른 사람을 데려와 "내 사람이다"라고 소개하는 모습을 상상해본 적 있다. 당신의 옆자리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는 상상. 그런 상상은 죽기보다도 싫지만, 나는 이 죽기보다도 싫은 상상을 하루에도 몇십 번씩 했다. 그 속에서 처참히 찢어지기도 했고, 쓰러지기도 했고, 이내는 몇 번이나 죽어보기까지 했다. 죽음, 끝 어쩌면 영원한 안식의 단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발, 그런 순간이 오지 않길 해달라고. 혹여 오더라도, 내가 마주하는 일은 없게 해 달라고. 이제 두 번 다시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두 번 다시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슬픔과 추억이 우중충한 밤하늘 아래 자멸하는 시간. 조금씩 죽이고, 혹은 조금씩 되살려보는 기억들. 그 속에 처참한 가슴을 부여잡고 힘겹게 당신의 이름을 내뱉어본다. 당신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당신도 나를 그리워하고 있을까. 아니, 어쩌면 내 이름 따위 금세 잊어버리고 잘 지내고 있으려나. 고개를 젓고 다시 창밖 하늘을 올라다 본다. 별빛을 가린 구름, 우중충한 밤하늘. 내일이면 세차게 비가 쏟아질 하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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