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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n 24. 2022

너의 바다와 나의 해변

 어디까지 밀려 내려갔는지 모르겠어. 눈을 떠보니 어느덧 육지에 밀려 나와 있더라. 망망대해의 거대한 바다의 품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는 꿈을 꿨는데 말이야. 그곳에서 나는 너의 손을 잡고 환히 웃기도 했고, 따가운 햇볕 아래 매끄러운 피부를 까맣게 태우기도 했지. 고통이랄 것은 아주 사소한, 그런 것들이었어. 내가 너와 함께했던 순간만큼은 말이야. 힘든 것도, 슬픈 일도 그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을 수 있는 거.

 따가운 모래가 그득한 해변이었지. 눈을 떴을 때는 세상이 온통 새까만 밤이었어. 그토록 찬란했던 하늘의 별과 달은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어. 암초 사이를 누비며 달려온 차가운 바람이 새까맣게 탄 피부를 어루만졌어. 그 차가운 냉기에 나는 한참이나 웅크려있어야 했어. 언젠가 네가 쏜살같이 내게 달려와줄 것만 같았거든. 허리를 곧추 세우고 발밑을 바라봤어. 그런데 웬걸. 지느러미가 사라져 있던 거야.

 수초 마녀의 회유는 가장 현실적인 것들이었어. 마녀는 나에게 너 없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는 힘을 기르라고 말했어. 세상은 험하고, 인연은 언제든 끊어질 수 있다고. 그 연약한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네가 무던히도 힘썼던 건데, 나는 너와 나눈 몇 마디 말들로 내 안에 소중한 것들이 부서지는 것을 느꼈어. 넌 알고 보니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도 되었던 거야. 네 인생에 꼭 내가 없어도 됐던 거야. 그게 사실이 아닐지라도, 그런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 난 널 놓는 상상을 했어. 그게 날 괴롭게 따라다녔거든. 난 네가 내 인생의 전부였는데, 넌 내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게 말이야. 나는 수천번 홀로 웅크려 너와 헤어지는 상상을 했어. 언젠가 네가 날 떠나는 모습, 날 떠나 새로운 연인을 만나는 모습, 그걸 바라보는 내 모습까지도.

 네가 모험을 하겠다고 사라졌던 날 밤, 나는 홀로 구슬프게 울며 수초 마녀를 찾아갔어. 어떻게 하면 홀로서기를 잘할 수 있느냐고. 마녀가 말했지. 나에게 너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넘겨주면,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했어. 나는 마녀에게 내 목소리를 주었고, 지느러미를 잃었어. 해변으로 밀려 나와 물을 토해내며, 난생처음 마주한 매끈한 두 다리를 내려다보았어. 가시밭길 같은 모래사장을 두 다리로 버티며 일어나면서 말이야. 신기했지만 두려웠어. 그리고 무서웠어. 너 없이 홀로 살아갈 생각을 한다는 건.

 이제 나는 다시 되돌아갈 수 없어. 네가 모험을 끝내고 돌아오는 날, 그곳에 나는 없겠지. 설령 내가 바다로 다시 돌아간다 해도, 이 두 다리로는 오래 헤엄치지 못할 거야. 우리들은 각자의 말과 생각과 다짐과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들 때문에 또다시 서서히 무너지게 될 거야. 그리고 이렇게 무너진 거야.

 괜찮아. 다 괜찮아. 이제는 우리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도록, 내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넌 아름다운 지느러미로 너의 세상을 헤엄치면 되고, 난 나의 세상에서 두 다리로 걸어가면 되니까. 설령 내가 어느 날 바다에서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해도, 그래서 널 떠난 걸 후회하게 된대도 괜찮아.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괴로운 일도 나만 겪으면 되잖아.

 우리 이제 더는 아프지 말자. 날이  서로의 생각들 때문에 마음마저 훼손시키지 말자.  있잖아. 그저 네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우리의 추억이  좋았던 기억으로 않으면 좋겠어.   마음속 작은 어항에 담아둘 거야. 언제나 꺼내 보면서 지난날의 사랑을 회상할 거야. 이제 네가 누굴 만나든 상관하지 않아. 신경 쓰지 않을 거야. 그러도록 노력할 거야. 그게 네가 행복할 일이라면, 그래도   좋아.  좋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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