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날들을 회상했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공책에 한 자 한 자 글자를 눌러썼다. 그런식으로라도 애써 후회를 부정하고 있었건만, 턱밑으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 내렸다. 후회와 두려움, 그 사이에는 연약한 다짐이 얇게 붙어 있었다. 애초에 너 없이 살 자신도 없었는데,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너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던 걸까. 이렇게 후회하면서, 그리고 또는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잘 된 선택이라고 위안하면서. 안도는 곧 검은 폭풍이 되어 내 온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그토록 쓸쓸하고 차가운 밤이 아닐 수 없었다.
혹여 네가 문을 열고 들어올까 봐, 혹은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날 기다리고 있을까 몇 번이나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창문 밖, 너와 비슷한 목소리가 새어 나올 때면, 혹시 네가 오지 않았을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으며 건물 밑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러고는 애써 침착하게 숨을 삼켰다. 어른스럽게 헤어져놓고는, 왜 아이처럼 구는 걸까, 난. 한층 슬퍼진 눈으로 이불 위에서 두 손만 만지작 거린다. 울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으로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누구를 위한 이별이었을까. 이게 결과적으론 정말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을까. 나만 힘들면 다 해결되는 걸까. 너도 나처럼 힘들어갈까. 아니, 어쩌면 나보다 네가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오래 지속될 아픔을 택하는 대신 잠깐의 아픔을 택했던 난, 그래도 처음엔 의연했다. 이별만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었으니까. 계속 서로에게 상처 주고 아프게 할바에야, 좋았던 날 아름답게 끝내는 것이 좋겠다고.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차라리 아프면서, 서로 부딪히면서 끝까지 함께 있었어야만 했을까. 그런 뒤에 이별했다면, 이런 후회와 미련도 금세 시들어버리고 말았을까.
넌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려울 좋은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네가 욕심이 났고, 널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힘써왔다. 그런 날들이 쌓여 널 괴롭게 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때 나는 손을 놓기로 결심했다. 사랑하는데 이별하는 것. 어느 연애소설에나 나올 법한,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말도 안 되는 상황들. 너와 난 이런 찢어지는 이별 따위 없을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랑에는 언제나 끝이 있던 거였다.
이제 또다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너에게 쏟았던 나의 사랑과 나의 에너지와 나의 시간들만큼, 누군가에게 그만큼, 다시 마음을 줄 수 있을까. 아니, 이젠 그런 사랑의 행위들이 무척이나 버겁게 느껴진다. 네가 내 인생의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그래서 정말 후회 없이 사랑을 주고 싶었던 건데. 마지막이 쓰러지자, 이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도 않다.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헤어지던 날 했던 말이 있다.
"사랑은 머리가 기억하는 게 아니라, 감각이 기억하는 거래. 그래서 우리가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일은 기억하지만, 감정이 무뎌졌기 때문에 아련해질 수 있는 거래. 가슴 아팠던 이별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수 있다는 거야."
그 말은 어쩌면 당신을 위로한 말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독이는 말이었겠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을 거라고, 이 사무치게 그립고 아픈 마음도 무뎌지게 될 거라고, 언젠간 당신을 가슴 깊이 묻어둘 수 있게 될 거라고.
차라리 내 가슴 한 편에 아련하게 남았으면 좋겠다.
언제고 꺼내 보면서, 당신을 추억하면서, 그렇게 당신을 마지막 사랑으로 기억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