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희영 Jun 28. 2022

사랑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 기억하는 거래

 지난밤, 우리가 함께했던 모든 날들을 회상했다. 울컥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공책에 한 자 한 자 글자를 눌러썼다. 그런식으로라도 애써 후회를 부정하고 있었건만, 턱밑으로 주르륵 눈물이 흘러 내렸다. 후회와 두려움, 그 사이에는 연약한 다짐이 얇게 붙어 있었다. 애초에 너 없이 살 자신도 없었는데, 나는 대체 무엇을 위해 너와 헤어지기로 결심했던 걸까. 이렇게 후회하면서, 그리고 또는 결과적으로는 모두에게 잘 된 선택이라고 위안하면서. 안도는 곧 검은 폭풍이 되어 내 온몸과 마음을 휘감았다. 그토록 쓸쓸하고 차가운 밤이 아닐 수 없었다.

 혹여 네가 문을 열고 들어올까 봐, 혹은 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날 기다리고 있을까 몇 번이나 현관문을 열어보았다. 창문 밖, 너와 비슷한 목소리가 새어 나올 때면, 혹시 네가 오지 않았을까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으며 건물 밑을 내려다보곤 했다. 그러고는 애써 침착하게 숨을 삼켰다. 어른스럽게 헤어져놓고는, 왜 아이처럼 구는 걸까, 난. 한층 슬퍼진 눈으로 이불 위에서 두 손만 만지작 거린다. 울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으로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누구를 위한 이별이었을까. 이게 결과적으론 정말 모두에게 좋은 일이었을까. 나만 힘들면 다 해결되는 걸까. 너도 나처럼 힘들어갈까. 아니, 어쩌면 나보다 네가 더 힘들지도 모르겠다…. 오래 지속될 아픔을 택하는 대신 잠깐의 아픔을 택했던 난, 그래도 처음엔 의연했다. 이별만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믿었으니까. 계속 서로에게 상처 주고 아프게 할바에야, 좋았던 날 아름답게 끝내는 것이 좋겠다고. 그런데 지금은 모르겠다. 차라리 아프면서, 서로 부딪히면서 끝까지 함께 있었어야만 했을까. 그런 뒤에 이별했다면, 이런 후회와 미련도 금세 시들어버리고 말았을까.

 넌 내 인생에서 두 번 다시 만나기 어려울 좋은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네가 욕심이 났고, 널 잃지 않기 위해 부단히 힘써왔다. 그런 날들이 쌓여 널 괴롭게 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때 나는 손을 놓기로 결심했다. 사랑하는데 이별하는 것. 어느 연애소설에나 나올 법한,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말도 안 되는 상황들. 너와 난 이런 찢어지는 이별 따위 없을 줄 알았는데, 역시 사랑에는 언제나 끝이 있던 거였다.

 이제 또다시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너에게 쏟았던 나의 사랑과 나의 에너지와 나의 시간들만큼, 누군가에게 그만큼, 다시 마음을 줄 수 있을까. 아니, 이젠 그런 사랑의 행위들이 무척이나 버겁게 느껴진다. 네가 내 인생의 마지막일 줄 알았는데, 그래서 정말 후회 없이 사랑을 주고 싶었던 건데. 마지막이 쓰러지자, 이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도 않다.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헤어지던 날 했던 말이 있다.

 "사랑은 머리가 기억하는 게 아니라, 감각이 기억하는 거래. 그래서 우리가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일은 기억하지만, 감정이 무뎌졌기 때문에 아련해질 수 있는 거래. 가슴 아팠던 이별도,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수 있다는 거야."

 그 말은 어쩌면 당신을 위로한 말이 아니라, 나 자신을 다독이는 말이었겠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을 거라고, 이 사무치게 그립고 아픈 마음도 무뎌지게 될 거라고, 언젠간 당신을 가슴 깊이 묻어둘 수 있게 될 거라고.

 차라리 내 가슴 한 편에 아련하게 남았으면 좋겠다.

 언제고 꺼내 보면서, 당신을 추억하면서, 그렇게 당신을 마지막 사랑으로 기억할 수 있게.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 앞에 우리는 모두 어린아이가 되지 않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