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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n 29. 2022

결속과 결핍 사이, 후회의 꽃은 피어나고

 결속의 집합 속에는 불필요한 참견과 질투가 있었다. 그걸 속박이라고 여기며, 그 시선에서 벗어나려 부단히 노력했었다. 그게 뭐 그리 부담스럽다고, 뭐가 불편하다고. 단지 사랑의 한 표현에 불과했다. 어딜 가서 뭘 먹는지, 뭘 하는지, 뭘 입었는지. 사실 그런 것 따위가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었으리라. 끼니를 걱정하는 것만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도 없었을 것이다. 단지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그 정도. 딱, 그 정도의 사랑이었다.

 물리적으로 가까이할 수 없었던 몸은, 각자의 시간에 익숙해져 가는 줄 알았을 테다. 하루 종일 붙어 지내다 떨어져 있어 보니, 어느덧 혼자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가 헤어져도 (혹은 내가 당신 없이도) 잘 살 수 있으리라 속단했을지도 모른다. 그 넘치는 오만과 바보 같은 판단이 뼈아픈 고통을 선사했다는 것은 죽어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이 그동안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있을 테다. 서로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그것이 부담으로 여겨져 상대가 도망칠까 겁내면서,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소중히 꺼내보였던 순간들은 다 잊어버린 채로.

 우리는 그간 서로에게 무심하지 않았다. 그것은, 빈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고독과 쓸쓸한 감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존재했다 사라진 것을 애초에 없던 것으로 정의할 수 없듯, 우리의 관계도 그랬다. 차라리 처음부터 만나지 않았더라면, 당신의 이름을 몰랐더라면, 맞닥뜨리지 않을 상황이었다. 어쩌다 우리는 사랑에 빠져서, 그리도 긴 세월 동안 서로에게 엉겨 붙어 있어서, 왜 떨어지는 순간마저 고통스러워야 하는지를 깨닫지 못했다. 유에서 완전한 무가 될 수 없다는 걸, 완전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시간들을 자책으로만 흘려보낼 우리들의 미래에게, 현재에게, 그리고 과거에게 끊임없이 말해야 한다. 우리의 탓이 아니라고, 당신의 탓도 나의 탓도 아니라고. 차라리 이 순간만큼은 주변의 상황들을 탓하자고. 그런 상황이라면 누구나 흔들렸을 테니까. 만남에 익숙해졌던 우리에게 영원한 이별 따위 없을 거라 확신했던 것처럼 어리석은 모습으로, 자책 따위 집어던져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우리를 탓하지 않고, 서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으므로.

 단 한 번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은 날들이 없었다. 어쩌면 우리의 몸과 마음이 찢어진 이 순간마저도 나는 사랑하는 중이라고 말할 테다. 언젠가, 우리가 기약 없는 만남을 약속하던 날 밤의 당신 목소리가 떠올랐다. 괜찮다고, 다 괜찮을 거라고. 정말 그때 당신은 괜찮았던 걸까. 아니, 우리는 그 순간마저 솔직하지 못했다.

 헤어지고 싶지 않았던 것 아닌가. 어려운 이별을 택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남들처럼 편하게 사랑만 해도 모자란 시간들. 안부를 묻는 정도의, 딱 그 정도의 사랑이 아닌, 뜨겁게 입술을 맞대고 부서져라 온 마음을 껴안고 싶을 사랑을 하고 싶었을 테다. 헤어짐에 임박해오자, 그러지 못한 아쉬움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그럼 헤어지지 않으면 됐는데, 왜 우리는 헤어졌던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우리의 사랑이 부족했음이 아니다. 그러니 부디 숱한 밤동안 당신을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는 단 한 번도 당신을 미워한 적 없었다. 과거의 당신을, 현재의 당신을 그리고 미래의 당신마저도 나는 사랑한다. 숱한 밤, 보내지 못한 사랑을 헤아려도 모자랄 판에, 나는 당신을 미워하고 탓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수많은 시간 동안 자학하고 있을 당신에게, 그런 당신의 손목을 붙들어 꼭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천천히 당신에게 말해줄 테다.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고.

 사랑만 해도 부족한 시간. 나는 오늘도 눈을 감고, 당신의 얼굴을 천천히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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