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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l 01. 2022

부서지는 파도에 휩쓸려 가던 밤

 혼자 있는 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차가웠어. 너무 추워서 어디에서나 혼자선 마음 편히 잠들어 있을 수 없었지. 당신이 곁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을까. 사랑에는 언제나 이별이 있다고 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어. 아니, 어쩌면 그렇게 크게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던 거야.

 당신 없이도 잘 지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며칠간은 그런 안일한 생각에 사로잡혀 지냈는지도 몰라. 당신과 함께 찍은 사진을 한참 올려다보다 머리맡에 두고서 선잠에 들었는데도 말이야. 당신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점점 당신을 잃었는지도 몰라.

 내 마음속의 파도는 계속 부서졌어. 하얗게 부서지고 덮어지기를 끊임없이 반복했지. 하얀 거품 속에 얼굴을 파묻고 한참 일어나지 못했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은데, 파도는 계속 밀려들어 내 온 영혼을 끌고 내려가버렸지. 하얀 파도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었어. 길게 뻗은 손바닥들이 나를 통째로 집어삼켰어. 나는 그렇게 아주 깊은 심해로 끌려가게 되었던 거야.

 심해의 중력이 내 영혼을 짓누르기 시작했어. 나는 점점 얇게 짓눌려 숨통이 조여 가는 중에도, 내가 무엇 때문에 숨이 막히는지도 몰랐어. 당신을 열렬히 사랑했던 순간부터였는지, 당신과 헤어지던 순간부터였는지, 아니면 이렇게 혼자 남게 된 순간부터였는지 모르겠어. 어떤 순간들에나 차가운 외로움 같은 건 존재했었는데, 명확히 어느 순간부터 심해로 빠져들게 되었는지 알지 못했지. 심해에서 휘몰아치는 물길이 내 머리채를 휘어잡고는 놓지 않았어.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소리 없는 비명을 내질렀어. 너랑 이별하고 나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말이야.

 어떤 날은 혼자 있고 싶었어. 누군가의 상냥한 위로나 안부 같은 것들을 듣고 싶지 않았거든. 그 물음에 대답하는 것 자체도 무척이나 피곤하게 느껴졌어. 어쩌면 참견같이 들렸을지도 몰라. 타인들의 목소리는 마치 당신과 헤어지기를 바랐던 것처럼, 부정적으로 들리기 시작했지. 누군가의 따뜻한 한마디가 차갑게 느껴졌을 때부터일까? 그래 어쩌면 그때부터 나의 영혼이 심해 쪽으로 휘감겨 갔는지도 모르겠다.

 내 몸과 영혼은 점점 더 어둡고 차가운 심해로 잠겨 들어가. 이게 익숙해지는 날이 올까. 너의 따뜻한 품도 목소리도 마음도 까맣게 잊어버릴 만큼, 추위에 적응하는 날이 올까. 언젠가는 그런 날들이 오지 않기를 바랐는데, 이제는 그래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 그럼 네가 없어도 잘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얼어 죽을 것 같이 추워도 아무런 감각도 없게 되지 않을까. 그럼 정말 모든 게 괜찮아질지도 모르겠다. 너 없는 밤, 심해에 잠겨 꼭꼭 숨어버리는 시간들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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