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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l 03. 2022

당신이 그리운 밤에는 시를 읽어요

 번잡한 감정들이 봄날의 미세먼지처럼 마음속을 떠다녔다. 공기 중을 부유하는 그 불순물들이 폐 깊숙이 빨려 들어왔다가, 딱 달라붙어 떨어지지도 않았다. 감정을 건드린 먼지들은 진득진득한 점액이 되어, 심장 주변으로 옮겨 붙어 단단히 에워쌌다. 가슴이 무척 답답하거나, 혹은 가렵기도 했다.

 눈물 같은 것은 이미 한참 전에 메말라버렸다. 언젠가 소나기처럼 울음이 쏟아졌던 적이 있었던 탓이다. 당신만 생각하면 하염없이 눈물만 흘릴 것 같았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내 마음에는 슬픔이 범람해 넘쳐버리고, 가뭄으로 메말라버린 호수만이 남았을 뿐이었다.

 슬프지 않다고 해서, 감정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날 이후, 내 안에 있던 어떤 것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나가 버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의 몇 달을 그렇게 지내왔다. 그리고 최근 며칠을. 메말라버린 슬픔과 뜨거운 사랑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들이 또 눈앞을 떠다녔다. 먼지처럼, 잡혀도 잡히지 않는, 햇볕에 반짝이는 은하수 같은 먼지처럼.

   마음을 메울  있는 것은 없었다. 아주 바쁘게 지내거나 친한 사람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는 공허함을 채울  없었다.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해내야만 했다.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기 위해, 당신을 기억하지 않기 위해, 당신을 추억하지 않기 위해 궁극적으로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 내가 당신을 미워할  없음을 알고 있었다. 당신은 나에게 그런 사람이었다. 한없이 사랑만을 내어주고 싶던 사람, 나라는 사람을 가꿔준 사람, 그래서 잊을 수도 없는 사람. 당신의 따뜻한 사랑 안에 나의 자연과 나의 생태는 살아  쉬었다. 조그마한 호수에는 작고 어여쁜 생명체들이 헤엄을 쳤고, 숲의 나무와 꽃에서는 향기가 났다. 온전히 당신만이 일궈낸, 나의 자연이었다. 나는 당신가꿔놓은 나의 자연이 조금씩 쓰러지는 모습을  때마다 처참한 심경으로 바라만 보았다. 이제 눈물은 나지 않았고, 슬픔은 증발해버렸으니까. 아주 덤덤하지만, 또는 공허한 마음으로 그것들을 내려다보았다. 돌이키고 싶다한들 방법이 없는, 어떻게 손을 써볼 수도 없는 거대한 자연 현상 앞에 굴복해버린, 지금 현재  모습을.

 공허함을 이기기 위해선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당신의 사랑을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을. 그러나 다른 이의 사랑이라거나 만남 같은 것으로, 당신이 내게 준 사랑을 덮을 수 없었다. 당신에게 받은 사랑이 너무 커서, 당신의 마음으로 가득 찬 나의 숲에 새로운 누군갈 들일 수도 없었다.

 당신을 덮기 위해   편에 시집을   집어 들었다. 시인이 던지는 질문들을 천천히 음미하고 곱씹으며 읽었다. 낱말과 문장 속에 숨겨진 작가의 의도를 찾아내는 것만으로도, 나는 여러 생각들을 쏟아내 당신의 생각을 잠시 덮을  있었다. 어쩌면 이런 마음이었을까, 이런 생각이었을까,  이렇게 썼을까. 퍼즐 같은 시를 해체하고 뜯어보다 보면 시간은 어느새  시간을 훌쩍 넘겨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당신을 덮을  있곤 했다.

 그러나 이후, 또다시 혼자 남은 시간이 되면 나의 숲엔 찬바람이 불어 닥쳤다. 아주 시리고 추운 바람이었다. 그럼 한참 시린 가슴을 누르며 멍하니 무언갈 응시하곤 했다. 가운데가 옴폭 파여 들어간 베개 하나를, 흑백사진  환히 웃는  얼굴을,     꼭꼭 눌러쓴 장문의 편지들을. 시를 읽으면 괜찮아질  알았는데, 오히려 가슴 한가득 차가운 계절의 바람만  없이 불어닥쳤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가끔은, 아주 펑펑 울고 어 지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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