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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l 05. 2022

이번엔 내가 먼저,  널 달래줄 수 있으니까

 난 가끔 내가 어디쯤에 있는지 떠올려보곤 해. 일상을 살아가면서는 잊고 살다가 어느 순간 문득 말이야. 시간이 굴린 물레 바늘에 손끝을 찔리고, 찔끔 핏방울을 보고 나서야 정신을 차려. 내가 지금 뭐 하고 있지, 어디서 서 있지, 그리고 넌 어디에 있지.

 내가 우리 관계를 어떻게 해줄 수 없었는데 말이야. 어떤 날은 나에게 관계의 해결이 숙제처럼 느껴지곤 했어. 무언가 꽉 막혀버린 구멍을 뚫어줘야만 할 것 같았거든. 난 견딜 수 있었는데, 네가 견디기 버거워 보였어. 그래서 내가 감행했던 것들이, 너에겐 오히려 해가 되었을까? 넌 사실 이별하고 싶지 않았을 텐데, 내가 애써 널 밀어냈던 걸까? 아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래. 너에게 좋을 일이었다고 생각하면서 버티는 게, 그게 지금 지친 날 달릴 수 있는 유일한 주문이 되었으니까.

 새벽 일찍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리했어. 열대야로 일렁였던 밤은 어느새 더위를 식혔고, 방안에는 서늘한 기운만 남았어.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온다고 했다나 봐. 선선한 새벽 공기를 맞으며 동네를 한 바퀴 걸었어.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보았지. 푸르게 내려앉은 거대한 하늘의 도화지는 천천히 햇살로 물들고 있었어. 아침이 밝아 오는 거야. 이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는 거야.

 하루를 하나씩 걷어낼수록 네 얼굴이 불투명해질 줄 알았는데, 너는 오히려 더 선명하게 가슴에 남았어. 이상하게 있지, 오늘은 네가 더 사무치게 그립더라. 해가 저문 밤에만 네가 떠오를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서늘해지고 추우니 네가 더 진해진 거야. 서서히 떠오르는 아침해처럼, 뭉근하지만 따뜻하게, 네가 떠오른 거야.

 난 아직도 우리가 맺은 사랑의 결말이 옳은 건지 잘 모르겠어. 내 선택을 존중해주었던 낯선 여행지에서의 널 떠올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이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널 말이야. 넌 그때 널 위해서 이별을 택했던 걸까, 나를 위해서 이별을 택했던 걸까? 아니, 어쩌면 우리를 위해서 이별을 택했을까? 다 괜찮다고만 말하던 널, 나 몰래 구석에서 울음을 삼키던 널, 그렇게 한창 울고서도 울지 않은 척 날 따뜻하게 안아주던 널 떠올려. 괜찮다고 말하는 네가 바보 같아서, 나는 또 한참 네 품에서 울었는데 말이야. 그게 어느덧 아련한 옛일처럼 느껴져. 너무 오래된 것 같아. 널 본 게.

 막연한 기대 따위 품지 않으려고 하는데, 오늘은 무척이나 네가 보고 싶어. 그냥, 이 또한 견뎌야 하겠지만 말이야. 왠지 너는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데, 내 연락을 기쁘게 받아줄 것 같은데, 웃으며 서로 마주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희망찬 모습만 되새기다 보면, 어떤 순간엔 불쑥 너에게 찾아가고 싶어 져. 마치 모든 게 하나의 이벤트였던 것처럼, 서프라이즈였던 것처럼 말이야. 상처만 줘서 미안하다고, 이제 우리 아프지 말자고, 헤어지지 말자고 말하면서 말이야. 그렇게라도 시간을 뒤집어보면 어떨까 떠올렸다가, 다시 또 가슴에 무겁게 삼켜. 널 그리워한다는 이유 만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우리 미래를 가시처럼 안게 할 수 없으니까. 그만큼 우리가 사랑했으니까. 내가 널 아직도 사랑하니까.

 그래도 난 궁금해. 네가 어디쯤에 서있는지. 그 자리 그대로 서 있는지, 열심히 달아나 도망치는 중인지. 그냥, 그냥 말이야. 네가 어디쯤에 있는지 알면, 그래도 가끔 달려가 널 안아줄 수 있으니까. 이번엔 내가 먼저 괜찮다고 말하며 우는 널 달래줄 수 있으니까.

 보고 싶어. 그냥, 가끔 이렇게 혼자, 혼잣말해도 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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