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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l 08. 2022

미움 속에 이별은 싹트고, 이별 곁에 망각은 존재해

 사력을 다한 마음이라면 어떨까?


 지구로 쏟아지는 혜성을 격추하는 심경이라거나, 밀려드는 파도를 되돌려 보내는 일이라거나, 지난날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다거나. 물리적으로 어려운 일들을 해내려는 것, 혹은 해내려고 마음먹는 것들. 설령 그대로 허탕 치는 일 이래도 몸으로 보여준다면 말이야. 말과 표정으로 전달하는 감정들이 적절치 못했다면,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했다면 말이야. 그런 어설픈 상상들이 현실이 된다면, 그럼 우린 서로가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었을까?

 난 아직 사랑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 안다고 자신하던 사람들도 결국, 거대한 운명 앞에 무릎을 꿇었거든. 수많은 이의 눈물과 참회 속에 나는 천천히 부서져갔는지도 몰라. 난 저렇게 무너지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지. 우리의 사랑을 지키고 싶었어. 단지 그 이유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오만과 착각이 아니었나 싶어. 사랑을 지키는 데는 방도가 없었는데 말이야. 그땐 우리가 헤어져야만 답이라고 생각했던 거야.

 로맨틱한 영화 속에서 가슴 아픈 이별 후 극적으로 재회하는 커플들을 보면서, 어쩌면 우리도 저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 우리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눈에 보이는 기대 같은 거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몸이 멀어져 있어도, 우리의 영혼은 늘 서로를 보듬어주고 있을 거라고. 그런데 그렇지 않더라.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엔 다들 그렇게 되었으니까.

 아름다운 이별 같은 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어. 누구 하나 피눈물을 흘려야만, 이 뜨거운 투쟁은 끝이 났어. 할퀴고 헐뜯고, 끝내는 영혼이 만신창이로 너덜너덜 해질 때 즈음 말이야. 그러기 전에 나는 우리의 아름다운 사랑을 지키고 싶었어. 그렇게 훼손되고 상처받는 사랑을 지켜보고 싶지 않았거든. 서로가 얼마큼 상처를 줬나 들여다보고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말이야. 그런 극단의 상황으로 치닫기 전에 말이야.

 하지만 이별의 말미에 우리는 너무도 뒤늦게 우리의 사랑을 깨달았어. 끝까지, 우리의 세상이 자멸하지 않도록 손을 뻗었어. 그러기엔 이미 늦어버렸는 걸. 혜성은 지구를 파괴했고, 파도는 끝없이 밀려들었고, 타임머신은 만들어지지 못했는걸. 모든 걸 되돌리기에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을 버렸던 거야. 차라리 잘못을 해버리면 원망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사랑할 구실을 없애버리는 거, 믿음을 배반하는 거, 사랑하는 이를 죽도록 미워하는 거 말이야. 우리는 눈물을 머금고 서로의 손을 놓았어. 결국 그것뿐이었어.

 분명하지 못한 이별 사유가 우리를 길고 긴 의식에 빠지게 만들었지. 서로의 삶을 은밀히 지켜보면서, 잘 지내고 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지냈어. 서롤 미워하기도 했다가, 다시 또 외로워졌다가, 그러다 또 한 번 간절하게 서로를 원했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니, 난 이제 너무 지쳤어. 이해하지 못할 서로의 생각 때문에 더는 우리의 사랑이 무너지는 걸 바라보고 싶지 않아.

 미움 속에 이별은 싹트고, 이별 곁에 망각은 존재해. 우리가 점점 멀리한 세월이 길어질수록, 우린 더 열심히 서로를 잊을 거야. 서로가 서로를 잊을 때 즈음, 그때 서로를 그리워하게 될 거야. 그리움 속에 짙어진 후회와 미움만이 우리가 재회할 수 없는 현실 곁으로 밀어낼 거야. 그때가 되면 다 괜찮아. 이제 서로 사랑하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가끔은 있잖아.

 난 우리가 서로에게 사력을 다한 마음을 품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우리가 그런 마음이었다면, 지금쯤 우리, 조금은 달라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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