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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l 09. 2022

널 미워할 용기 따위

 나는 아직 널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어.


 너 없이 살아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우연히 마주한 네 얼굴은, 숱한 밤을 홀로 보내면서 쌓여온 두려움을 한 번에 날려버렸어. 밤새 울어서 퉁퉁 부운 눈으로, 그런 흐릿한 시선으로 널 올려다보는 일이, 어쩌면 꿈속에서나 존재할법한 시간처럼 느껴졌나 봐. 네가 아닌 줄 알았어. 난 또 내가, 만날 수 없는 널 보는 악몽을 꾸는 줄 알았어.


 긴 밤동안 따뜻한 햇살 아래 서 있는 네 모습을 바라보는 꿈을 꿨어.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 사이로, 싱그러운 꽃잎 위에 맺힌 이슬이 반짝 빛을 내는 들판에서, 넌 환한 미소로 날 바라보고 있었지. 우리는 손을 맞잡고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사랑을 속삭였어. 따뜻한 피부를 만지고, 향긋한 살 냄새를 맡으면서 우리라는 우주에 아득하게 빨려 드는 느낌들.

 그런 느낌은 꿈에서 깨고 나면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으로 바뀌었어. 아주 차가운 새벽이 내린 방 안엔 공허함마저 어색하게 느껴졌지. 이제는 혼자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분명 잠에 들기 전까지만 해도 지독하게도 혼자 되뇌었던 외로움인데, 이상하지? 고독이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게 말이야. 그 잠깐의 꿈이, 아무렇지 않았던 현실을 지옥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게 말이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안, 서늘한 공기, 천장을 물들이는 차가운 새벽의 빛깔들. 그 분위기에 동화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 침대 위에서 몸살을 앓았어. 아침 해가 온전히 떠오를 때까지, 꿈과 현실의 간극이 좁혀질 때까지, 너 없이도 아침햇살은 찬란하다는 걸 피부로 느낄 때까지 말이야.


 너 없는 시간들을 채우기 위해 처절하게 울부짖던 하루 끝엔, 아주 짙은 고단함이 밀려들었어. 침대 위에 녹아내리듯 몸을 뉘인 채로, 씻지도 않은 채로 천장을 올려다봐. 어느새 지난밤 꾸었던 악몽은 떠오르지 않아. 아니, 애써 떠오르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야. 나에게 악몽은, 네 얼굴이었으니까. 널 잊어야만 하고, 덮어야 하만 하는, 환한 햇살 속에 담긴 지옥이었으니까. 너 없는 현실 속 지옥을 견뎌내려면, 행복했던 지난날들을 기억하지 않아야 했어. 너와의 행복이 짙게 느껴질수록, 현실이 더욱더 불행하게 느껴졌거든. 드러누운 채로 눈을 감고선, 혼잣말로 되뇌어 봐. 난 지금 행복해,라고.

 언젠가 네가 나에게 물었지. 요즘 어떻게 지내느냐고. 난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애써 행복하다고 되뇐다고 말했지. 사실은 네가 없어서 불행하게 느껴졌던 건데, 네가 없어서 하루하루가 고달프고 외로웠던 건데, 차마 말하지 못했어. 그냥 행복해지려고 노력 중이라고만 했어. 그렇게 말하는 게 널 덜 힘들게 할 것 같아서.


 넌 나에게, 사랑이 식지 않았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말했지. 그런데 난 아직 잘 모르겠어. 우리가 예전처럼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했던 모습이 악몽처럼 남아버린 지금처럼, 우리가 서로 상처만 주다 결국 좋았던 날들마저 훼손시켜버리는 게 아닐까? 끝내는 내가 널 미워하게 돼버리면 어떡할까?

 난 싫어. 널 미워할 용기 따위, 만들고 싶지 않은걸.


 그래. 생각해보면, 난 아직

 널 만날 준비가 되지 않았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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