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에 몸을 맡기고 지내온 시간들. 방향을 잃은 적은 있었지만, 한 번도 내가 틀렸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 인생. 그 삶 속에서 내가 처음으로 의문을 가지게 되었어. 나 왜 지금 이러고 있지? 내가 잘 흘러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반짝거리며 늘어진 하얀 해변의 모래사장에서, 밀려드는 파도에 온 몸을 맡겼어. 시간이라는 물결에 몸을 맡겼는데, 누군가는 날더러 엉망진창 산다고들 하더라. 그래도 난 상관없었어. 그렇게 지내야만 널 바지런히, 최선을 다해 좋아할 수 있었거든. 세상 물정 모르고, 철딱서니 없이 널 사랑할 수 있었거든. 그래야만 순수하게, 무결하게 온전한 널 사랑할 수 있었던 거야.
나는 살면서 큰 후회를 한 적이 없었어. 늘 선택은 신중했고, 신중한 선택에 따라 과정에 최선을 다했고, 그래서 늘 결과도 만족스러웠어. 선택에 번복 없이 잘 살아왔던 내가, 널 만나게 되면서 거대한 해일을 만나게 됐어. 반짝이는 윤슬에 몸을 적시고 가볍게 물장구를 치던 해변이 아니었지. 널 지키기 위한 여정은 험준했어. 흐르듯 살아왔는데, 그렇게만 살면 다 괜찮을 줄 알았는데. 세상이라는 폭풍은 내가 살아온 생보다 짙고 위대해서 내가 맞서 싸울 수도 없었어. 나에겐 세상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을 만한 힘이 없었거든.
신도 아닌 나는 감히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을 수도 없었어. 그러나 넌 나에게 우리 관계의 결정을 내려주길 바랐지. 그건 어려운 결정을 피하려는 게 아니라, 오직 날 존중하는 따뜻한 마음에서 비롯한 거였어. 나는 그만큼, 결정에 막중한 책임을 느꼈어. 나 하고 싶은 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아만 왔던 나에게 말이야. 무거운 결정이라는 게 이토록 두려운 것인지를 몰랐어. 양면의 동전처럼, 뒤집히고 나면 다시 또 뒤집기 힘든 일처럼. 내가 널 평생 보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 질문에는 완벽한 긍정은 없었어. 맞아, 어쩌면 너 없는 내 삶은 그대로 주저앉아 버릴 것만 같았지. 결대로 사는 것. 어쩌면 네가 곁에 있었기 때문에 엉망진창 행복하게 살 수 있었던 거야.
이제는 순진무구하게 온전히 널 사랑할 수도 없어.
이제는 물결과 한 몸인 채로 살아갈 수도 없어.
이젠 내가 널 사랑하는 일이 이별 뿐인 걸까. 그것만이 온전한 우리의 사랑을 지키는 걸까. 나는 가끔씩 의문이 들어. 과거의 우리를 지키기 위해 널 사랑했던 건지, 아니면 현재의 널 사랑하고 있는 건지. 지금의 널 사랑한다면 우리가 헤어지지 말아야 했던 걸까. 하지만 난 네가 날 위해 결정권을 넘겨주었던 것처럼, 나도 널 생각해서 이별을 택했어. 이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일로 상처를 주지 않았으면 했어. 이제 더는 나라는 이름으로 널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우리라는 이름으로 망가뜨리고 싶지 않아. 우리가 우리를 사랑했던 것만큼, 소중한 마음들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야.
─ 그럼 있잖아.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리면서도 아주 작은 희망을 품었어.
─ 아주 먼 훗날 네가 나에게 따뜻하고 찬란한 햇살로 내리지 않을까,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못다 한 사랑을 듬뿍 또 떠 안겨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들 말이야.
하지만 알고 있어.
그런 마음도 언제까지나 희망 안에서만 넘실거릴 수 있다는 걸.
그래서 난 계속 희망을 품어. 언젠가 스러 없어질 꿈이라도, 그런 꿈이라도 꾸어야 나도 다시 중심을 잡고 결을 따라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난 여전히 널 사랑해.
과거에도 널 사랑했고, 지금도 널 사랑하고, 앞으로도 널 사랑할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