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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l 11. 2022

나의 텅 빈 방 안에 파도가 밀려들었다네

 어둠이 드리운 방에 온기는 없었네.

 지난날의 추억들이 파도처럼 밀려와 방 안을 그득히 채웠네. 하얗게 부서지는 거품과 쓸려가는 모래소리와 그 사이에 넘실거리는 누군가의 얼굴이 있네. 무릎에 얼굴을 묻고, 그 얼굴을 흘끔 쳐다보았네. 그리고는 다시 힘없이 고개를 떨구네.


 너무나도 보고 싶었던 얼굴이었는데, 어쩐지 그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네.

 사랑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목울대가 울렁거리며 그 소리를 막네.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아직도 이렇게 그득 사랑한다고. 차오른 울음을 삼키며 애써 눈물을 닦네. 괜찮다고 되뇌며 어깨를 감쌌네. 가슴속에 뜨겁게 타오르는 사랑을 삼키고 삼키다, 피부에 열꽃이 피었네. 밤새 당신에게 젖어 몸살을 앓았다네.


 파란 어둠이 내리는 방안에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네. 언젠가 당신이 나에게 남겨준 사랑들을 하나씩, 하나씩 버리고 치웠기 때문이라네. 들어낸 것만큼 채워지는 것 없이, 그저 텅 빈 그 공간에서 나는 한참을 숨죽여 울었다네. 혹시 당신이 내 울음을 듣고 나타날까 봐, 실제로 당신을 마주하게 돼버릴까 봐.


 언젠가부터 당신을 마주 보는 것이 두려운 일이 되었다네.

 내가 사랑한다는 이유로 당신을 상처 입게 할까 두려웠다네. 이별을 먼저 말한 것은 나였는데, 어쩐지 사랑은 그 전보다 더 짙게 느껴졌다네. 당신이 곁에 있을 때는 몰랐던, 그랬기에 빈자리가 더욱 선명해져 나의 빈 방을 차갑게 메웠다네.


 두려움은 여러 가지 형태로 나에게 다가왔다네. 당신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마음 외에도 말이네. 당신이 날 영원히 잊어버리면 어쩌나, 우리가 다시 만나지 못하면 어쩌나, 당신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어쩌나. 그 옹졸한 마음들이 내 방을 더욱 좁히고 어둡게 만들었다네. 어둠 속에 잠식되어가는 나를, 나는 차츰 더 차가운 심해로 몸을 이끌었다네. 그 세계에서 당신을 영원히 미워할 준비를 했다네. 당신을 미워해야만 나도 당신을 잊을 수가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라네. 숨을 참고 아주 오랫동안 잠수를 했다네. 그 어두컴컴한 심해에서, 불빛 하나 들지 않은 해저의 밑바닥에서.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들었네. 방안에는 여전히 새파란 새벽빛이 내리고 있었네. 두 무릎을 포개 가슴까지 끌어안고는, 그렇게 긴 새벽에 잠겨 있었네. 방에는 모든 게 그대로였다네. 가구며, 이불, 베개, 옷장까지도. 그런데 그대로인 그 공간이 무척이나 허전했다네. 당신의 채취가 아침이슬처럼 맺혀 있는 것이 보였다네. 이 새벽이 지나면, 다음날 아침 해가 떠오르면 햇살에 증발해버릴 아주 작은 것들이 말일세.


 여전히 이 방엔 온기가 없었네. 추억이란 이름의 파도가 발가락 사이를 출렁거리며 밀려들었고, 그 파도는 이제 점점 썰물이 되어 빠져나가는 중이라네. 내가 언제까지 당신을 추억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 새벽이 지나 아침이 오면 사라지는 이슬처럼, 썰물처럼 밀려나가는 파도처럼, 헐떡이던 울음을 진정시키고 무표정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내 모습처럼.


 모든 건 제자리에 있었다네.

 그리고 마침내는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갈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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