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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l 13. 2022

장마

 창밖엔 하루 종일 비가 내리고, 푸른 녹음을 침투하는 빗방울의 고함이 빗발쳐 들려온다. 시커멓게 드리운 먹구름과 쏟아지는 비, 빗물이 고인 발끝이 보인다. 당신이 길어다 준 마음이 아직 채 쏟아지지도 않았는데, 하늘은 자꾸만 울음을 토해냈다.


 하루가 참으로 더디게 흘렀다. 장마가 길어서일까. 많은 시간을 써 내려가도 이상하게 텅 빈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다. 침대 위에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았다. 요란한 빗소리가 창문을 툭툭 치고, 그 소리에 이따금 우울감에서 깨어난다. 그러다 이내 천천히 불규칙한 빗방울 소리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당신을 처음 만나던 날은 비가 왔다. 예상치 못한 소나기였지만, 우리는 차창 밖 유리문에서 흩어지는 빗방울을 함께 바라보며 침묵을 나눴다. 그 부드러운 침묵 속에는 뜨거운 긴장이 일렁였다. 가로등 불빛을 등지고 앉은 당신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당신의 얼굴을 잊지 않으려고. 벙긋거리는 당신의 입술을 보며 당신이 나에게 전하려는 말을 들으려 애썼다. 비가 세차게 쏟아지던 와중에, 내가 당신의 입술을 바라보고 있던 중에, 나는 조금씩 당신이라는 세상에 물들어가고 있던 것이었다.


 소나기가 그칠 때 즈음 우린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고요한 새벽에 빗물은 여전히 땅바닥에 고여있었고, 사람들은 아직 깨지 않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그 새벽, 서로의 뭉근한 눈빛을 교환하며 수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손 한 번 잡아보고 싶은 뜨거운 마음을 삼킨 채로. 그런 와중에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고 싶었다.


 그때처럼 오늘도 비가 내린다. 잠깐 쏟아졌던 봄비와는 다르게, 온 세상이 무너져라 쏟아진다. 그날 듣던 노래가 슬프게 들리는 것은, 우리의 마지막이 아름답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날의 당신 얼굴을 떠올려본다. 어둠 속에서 침묵하며 차창을 바라보던 당신의 옆얼굴을. 그때 당신의 시선은 정확히 어디를 향하고 있던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가, 아니면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가, 아니면 다른 생각에 잠겨 있던가. 명확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 가로등 불빛을 등진 당신의 얼굴에는 어둠이 드리워져 있었다. 나는 그날 당신의 얼굴이 어땠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건 지금도, 그렇다.


 당신은 어떤 마음일까. 지금 당신도 나를 생각하고 있을까. 한껏 쏟아내고도 또 하염없이 내리는 비. 눈물은 말라 흐르지 않더라도, 아직 당신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넉넉히 젖어 있을 테다. 창밖을 바라보며 턱을 괸다. 빗줄기를 바라보는 것인지, 아득한 물안개를 바라보는 것인지, 그 건너 희뿌옇게 물든 숲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비를 보았다가도 안개를 보았다가도 숲을 보기도 하는, 그러면서 제4의 다른 상상을 하는 것 같은, 잠시 우울이란 세상 곁으로 흘러든다.


 내가 당신을 붙잡을 수 없다면, 당신이 한 번 더 날 붙잡아주면 어떨까. 난 사실 지금 많이 흔들리는데, 이 이별에 선명한 정답을 내리지 못하겠는데. 그냥, 어쩌면 당신도 나와 마음이 같다면, 한 번쯤은 날 돌아봐줄 수 없을까.


 그런 애매모호하고 불분명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쌓인다. 희뿌옇게 부서지는 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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