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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Jul 15. 2022

night overtime

 붉어진 저녁놀의 눈시울을 바라보며, 굽은 허리를 곧게 세운다. 통통, 두어 번 허리를 두들기고는 다시 의자에 앉았다. 늘 매일매일 고된 하루였다. 주말, 평일 할 것 없이 일을 자처하고 나섰으니까.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뜯으며, 생기 없는 입술을 커피로 적시는 날 바라보던 사람들의 눈이 보인다. 측은한 눈빛들은 오히려 나에게 한마디 말도 붙이지 못했다. 습관적으로 한숨을 쉬고, 잠을 이겨내기 위해 눈을 비볐다. 이따금 아득해지는 현기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두 시선은 모니터에 집중하고 있었다. 곁에서 내 모습을 바라보던 친절한 팀원 하나가 나에게 잠시 바깥에서 바람을 쐬고 오라고 했다. 그래야겠다고 대답하고서는, 앉은자리에서 천장으로 고개를 젖히며 스트레칭을 했다. 휴식을 취할 때, 어떻게 있어야 하는 줄 몰랐다.


 해가 새까맣게 타들어간 밤에는, 대낮의 뭉근한 온기로 열대야가 일렁거렸다. 에어컨 바람을 많이 쐐면 좋지 않다며 창문을 열어놓고 간 팀원은 어느새 퇴근하고 없었다. 창문 너머로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사무실에 사람 한 명 없이 텅 비게 되자, 나는 그때야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일으켜 스트레칭을 했다. 슬리퍼를 찍찍 끌며 창문으로 향했다. 습기가 가득한 밤공기, 시끄럽게 울어대는 풀벌레 소리, 그리고 그 사이 아무 말이 없는 내 입술은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언젠가부터 말을 잘하지 않게 되었다. 업무적인 통화 할 때를 빼면 거의 대부분 입을 다물고 있다. 의미 없이 오고 가는 점심시간의 대화에서도 나는 힘겹게 눈을 뜨고 있기 바빴다.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책상 위에 팔을 포개고 엎어져있는 수고를 감수하고서라도, 잠을 좀 자고 싶었다. 어떤 날은 식사도 거른 채, 집으로 가 쪽잠을 자기도 했다. 몹시 피곤했다. 자도 자도 끝이 없는, 잠의 굴레에 빠져서는.


 몸을 혹사하는 나에게 무리하지 말라는 친구의 조언이 와닿지 않았다. 일은 사실, 내가 하고 싶어서 이지경까지 벌려놓은 것이었다. 완벽하게 끝내야만 직성에 풀리는 성미 탓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할 일도 아니었다. 어쩌면 나는, 무언가에 정신없이 몰두할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꼭두새벽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밤새 야근하고 집에 돌아와 쓰러져 자기에 바빴던 날들. 그런 하루에는 고민이나 걱정 따위에 사사롭게 끌려다니지 않았다. 일이 많은 것도, 일을 찾아서 하는 것도, 쏟아지는 피로에 쓰러지듯 드러눕는 그 상태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쓰러지기 직전의 아득함, 아찔한 현기증과 살짝 핀트가 나간 시선과 감 길듯 말듯한 눈꺼풀을 힘겹게 잡고 있는, 카페인에 중독된 상태가 좋았다. 그러다가 '이러다 죽겠다'싶은 지경에 이르렀을 때, 하루 종일 잠자는 걸 좋아했다. 아무 생각도 안 해도 되니까. 걱정도 고민도 없으니까. 난 충분히 열심히 살았으니까. 이런 달콤한 보상 같은 것으로 덮어보려는 헛헛하고 허무한 오만가지 생각들.


 검지로 나의 입술을 한 번 만져본다. 언젠가 누군가의 앞에서 쉼 없이 재잘거리던 나의 작은 입술을. 그리고는 힘겹게 손을 내린다. 두 손으로 머리칼을 쥐고는 크게 헝클인다.


 이제는 모든 게 버겁다. 말을 하는 것도, 쌓여가는 일감도, 그리고 지겹게 떠오르는 널 회피하는 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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