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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Aug 03. 2022

당신이 날 잡아 주었으면 좋겠어요

 복잡한 생각들이 얽히고설킨다. 당신에 대한 감정을 설명하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닌데, 이상하게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도 잊어버린 것만 같았다.


 그동안 사랑한다고 내뱉었던 수많은 진심 가운데, 거짓말은 단 하나도 없었다. 나는 그토록 당신에게 진심이었다. 내 사랑의 밑바닥까지 긁어다 당신에게 내어주고 나서야, 나는 그때야 날 돌아보게 되었다. 날 사랑하지 않고 방치해둔 탓에, 이곳저곳 상처 입고 멍든 나 자신을.


 당신을 밀어내는 시간만 꼬박 반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로 몇 달의 시간. 그럼 꼬박 1년이 되었다. 당신은 그동안 어떤 마음이었을까. 부서지는 중이었을까, 오히려 더욱더 단단해지는 중이었을까. 내가 당신에게서 악착같이 도망가는 동안, 내가 감정에 짓눌려 죽어가는 동안.


 난 사실 여러 날동안 많이 흔들렸고, 그 사이에서 혼자 우울과 씨름하며 살았다. 그러면 그럴수록 우울의 파랑은 더욱더 색이 짙어져, 날 어둠 속으로 끌고 내려갔다.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고, 혼자만의 시간 동안은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울었다. 늘 그때마다 당신을 생각했었는데, 어느 순간은 그런 당신도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이제는 날 아는 누구도 내 곁에 오지 않았으면 했다. 이 세상에 덩그러니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잔잔한 우울에 잠겨 지내는 일상이란, 참으로 지옥 같았다. 하루라도 울지 않으면 슬픔은 차곡차곡 턱밑까지 차올랐다.


 이 세상은 죽을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존재했다. 나는 언제든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유서한장도 쓰지 않았다. 유서를 쓰는 날에 진짜로 내가 죽기로 결심하게 될까 봐. 나도 모르는 새에 무서운 선택을 해버릴까 봐. 혼자 있는 시간이 두려웠다. 그래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른 무언가에 몰두해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무엇에? 방향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무엇을 이루며 살아야 하는지 찾지 않았다. 그런 것 자체가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삶이었다.


 이런 나에게도 열망 가득 찬 날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지 고민하는 날들이 있었다. 꿈을 이루면 된다며 열심히 살았다가, 돈을 많이 벌면 된다고 몸을 갈아 넣었다가, 다른 것 다 필요 없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었다. 반드시 하나만을 생각할 수 없었다. 세상이 그랬다. 세상이, 눈에 보이는 것들로 사람들의 진심을 판단하곤 했다.


 세상에 상처 입은 후, 당신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과연 날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을까. 아니,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고 있던 게 아닐까. 지금 당장 가진 게 없더라도, 나중에 먼 훗날의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며 살아가지 않을까. 그럼 만약, 당신이 생각하던 우리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날엔 어떻게 될까. 나는 결국 버림받게 되는 걸까. 당신은 아니라고 했지만, 진심을 있는 그대로 봐달라고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상처받고 싶지 않았다. 당신에게 버림받고 싶지 않았다.


 당신은 늘 돈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어 했다. 가진 것 없는 내가, 그 윤택한 꿈에 보탬이 될 수 없었다. 지금도 다 내려놓고 쉬고만 싶은데, 그 꿈은 나에게 이번 생엔 이룰 수 없는 아득한 꿈처럼 느껴졌다. 그럼 어쩌면 난, 당신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닌 게 아닐까. 당신이 원하는 꿈을 함께 그려나가 줄 수 있는 멋진 사람은 따로 있지 않을까. 당신의 마음도 충분히 알겠다.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누리고 싶다는 걸. 그러나 나는 그런 삶을 준비하는 과정마저 고통스러운 죄책감에 휘말릴 것만 같았다. 그 순간에 나는 집이 편안한 안식처가 아닌, 가시 돋친 방일 것 같았다. 우리가 사랑하기 위해 만났는데, 현실을 외면하면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세상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결국 이 세상에는 덩그러니 나 혼자 남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버림받고 싶지 않아서, 상처받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선택한 삶이었다. 이럴거면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낫지 않나, 그게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스스로를 타일러가며 울음을 삼켰다. 우울했다. 모든 날들이, 모든 시간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은 아주 쉽게 변질되었고, 버티지 못해 으스러지고 말았다.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자, 세상을 살아갈 힘도 사라졌다. 세상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도 힘에 부쳤다.

 '힘들다고 말하면 어떻게 되는데, 말하고 나면 왜 그런 생각 하느냐고 되려 날 몰아세울 거면서.'

  이제는 위로를 빙자한 상처는 받고 싶지 않았다. 가학적인 채찍질을 가하는 것은, 나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자책의 밤이 내리고, 나는 또 하염없이 우울의 바다에 영혼을 띄운다. 흔들리는 날, 쓰러지려는 날 붙잡아주고 받쳐주는 사람이 있을까.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와중에도 그게 당신이었으면 좋겠다고, 당신이 날 붙잡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얼마큼 더 살아야 나 자신을 짐이라고 여기지 않게 될까. 언제쯤 당신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을까. 손톱이 반토막이 될 때까지 똑똑 뜯어먹는 밤, 그 밤 한편에 불투명해지는 당신의 이름 그리고 어둠에 얼굴을 반쯤 감춘 내 모습. 어느 것 하나 분명하게 존재하지 않는 밤에 차분히 앉아 고통을 삼킨다. 누구도 들여다보지 않고, 들여다볼 수 없는, 내 세상에 갇힌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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