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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영 Aug 08. 2022

I'M BLUE

무기력한 밤이 날 집어삼킨 시간이면

나는 밑도 끝도 없는 심해에 영혼을 밀어 넣었다가도

또 어느 순간 잠깐, 그 몽롱한 꿈에서 깨어나면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되묻게 되기도 했다


내가 정말 우울한 게 맞는지

왜 느닷없이 울음이 터지는지

왜 계속 쓸쓸하고 우울한 노래만 찾아 듣는지 말이다


우울감을 부정하다 보면, 나 자신에게 진심으로 되묻고 싶은 것들이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난 사실 우울한 척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사람을 만나는 게 싫은 이유는, 단지 대화가 귀찮기 때문은 아닐까?

원래 내 천성이 게으른 사람이었던 게 아닐까?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는 누구인가'를 묻게 되었다


원래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계획적이고 새로운 걸 좇는 사람 아니었던가?

밝고 희망찬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지금은 밝은 에너지를 뿜어내기엔 너무 힘에 부치는 걸


그럼 난 어떤 사람이지?

밝지 않다면 그건 내 모습이 아닌 건가?


이 우울감의 원인도 모른 체

스스로 되묻는 질문에 쌓여 시름시름 앓는다


머리가 뜨겁게 과열되면, 그것만으로도 힘에 부쳐

하루 종일 잠만 자기도 했다


그런 날들이 지속되었다

사념의 우주에서 탄생한 터널에 빨려 들어

수없이 압착되고 찢어지기를 반복한 영혼이

고달픈 시간여행을 떠났다


과거에도 가보고, 현재에도 있어보고, 미래로 떠나보기도 하는,

그 어떤 곳에도 정답이 없는 질문만을 쏟아내며

경험에 빗대어, 현실에 빗대어, 추측에 빗대어

수십 차례 자신을 학대하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그 긴 어둠의 틈바구니에 끼어

밤새 시름시름 몸살을 앓다 깨어나면,

푸른 햇살이 내리는 새벽이 온몸을 휘감았다.


'나는 누구지?'


뜬 눈으로 새벽을 보내고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는다

해소되지 못할 우울을 품은 채로

오늘도 그 기분을 버리지 못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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